"부하 사무관이 (행정고시) 57회인데 승진하려면 4년 정도 남았죠. 근데 다른 부처 동기가 2년 전에 과장을 달았대요.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오겠죠. 저도…." 최근 만난 기획재정부 A 과장의 말이다. 해당 사무관의 10년 이상 선배인 A 과장 기수는 중소벤처기업부 등 타 부처에서 이미 수년 전 국장이 배출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재부 내에선 부이사관 승진을 고대하는 A 과장 선배 기수도 수두룩하다.
4일 환경부 장관·금융위원장 등 장관급 개각을 비롯해 윤석열 정부에서 기재부 출신이 중용되는 것을 두고 '모피아(재무부 영문 약자 MOF+마피아) 공화국'이라는 비판이 다시 나왔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기재부 출신의 타 부처 장관, 대통령실 고위직 임명은 비단 현 정부만의 사례는 아니다. 하지만 막 입직한 기재부 사무관은 고질적인 인사 적체로 첫 승진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가장 이들의 힘을 빼는 건 타 부처와 비교해 최대 2배 차이 나는 승진 속도다. 2009년 행시 재경직 문턱을 넘은 기재부 B 서기관(행시 53회)은 입직 14년 만인 지난해 첫 승진의 기쁨을 맛봤는데, 중기부에선 그의 다섯 기수 후배인 58회 승진자가 2022년에 나왔다. 국토교통부에선 7년 만의 서기관 승진 사례도 있다고 한다.
예산편성권을 가져 최고 실세 부처로 꼽히는 기재부 업무 강도는 전 부처 중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특히 주요 경제 대책 등 발표 몇 달 전부터 야근과 주말 근무는 일상이 된다. 몇몇 국·과장은 최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과 역동경제 로드맵 발표를 앞두고 차관보의 업무 연락을 새벽까지 받았다고 한다. 실무진 사이에서 "역동경제가 아니라 역동적인 고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 배경이다.
"일은 많아도 잘만 하면 높은 사람이 된다는 꿈을 갖고 기재부에 오는데 승진이 너무 안 되니 요즘은 많이 기피하는 것 같아요. 부이사관도 14~15년 걸린다면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30대에 재경직에 합격한 C 서기관의 말이다. 엘리트 경제 관료라는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버텨도 3급 승진까지 대략 25년 걸리는 상황에서 전직 기재부 고위직 선배들의 영전은 다른 세상 이야기라는 것이다. 어느덧 40대 중반이 된 C 서기관은 3급 승진 시점과 정년(60살)이 맞물릴 가능성도 적지 않다.
2년 전 관가에 충격을 안긴 기재부 사무관들의 네이버·두나무 이직 사례는 이런 박탈감이 빚은 단면일 것이다. 물론 방대한 규모의 기재부 공무원을 모두 제때 승진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격무와 과실의 불균형이 계속되면 언젠가는 탈이 날 수밖에 없다. 일부 기재부 사무관은 정부가 신설 예고한 인구전략기획부를 주목한다고 한다. 저출산 예산 사전심의권을 가져 기재부 내 비토 기류도 있지만 그만큼 이동 부담도 상쇄된다는 후문이다. 결과는 두고 봐야겠지만, 인구부가 기재부 인사 적체 해소, 과중한 업무 분담 계기가 될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