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놓고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면서 증권사들의 볼멘소리가 나온다. 내년 1월 금투세 시행을 앞두고 증권사들은 전산작업에 착수했지만, 또다시 금투세 보류 뉘앙스가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면서 프로젝트를 다시 중단해야 할지 계속 진행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외부 인력을 활용한 프로젝트에만 수십억 원이 소요된다.
16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KB증권, 삼성증권, 신한투자증권 등 대형 증권사들은 금투세 시행을 앞두고 분석·설계 등 전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증권사들은 2~3개월 전부터 금투세 관련 전산을 개발하고 있다. 회계법인과 계약을 맺고 금투세 유권해석 작업을 진행 중이다. 증권사가 운영하는 제도나 상품이 금투세 시행에 따라 회계처리에 영향을 받는지를 검토하는 작업이다. 아울러 IT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고, 외부 인력이 회사에 들어와 전산 개발도 같이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금투세를 둘러싼 정치권의 분위기가 바뀌면서 금투세 전산 개발 프로젝트가 또다시 갈림길에 서게 됐다는 점이다. 금투세 도입을 추진해 왔던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최근 이재명 당대표 후보가 “(금투세를) 과연 예정대로 시행하는 게 맞는지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며 시행 유예를 언급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금투세 유예 등 세제개편 논의에 즉시 착수하자며 야당을 압박하고 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 후보도 “금투세 폐지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금투세가 폐지될 경우 증권사는 개발 프로젝트를 중단하면 되지만, 적잖은 비용 손해가 발생한다. 외부 인력을 활용한 용역 비용만 증권사당 10억~20억 원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 인력을 다른 내부 프로젝트에 활용하는 방법 등도 찾아야 한다.
A 증권사 관계자는 “과거에도 금투세 시행을 앞두고 프로젝트를 50% 정도 진행하다가 유예되면서 중단했었다”며 “현재 그때의 소스를 꺼내 살을 붙이고 있는데, 다시 중단시켜야 할지 말아야 할지의 상황이 된 것”이라고 토로했다.
금투세가 다시 유예되면, 셈법은 더 복잡해진다. 유예 기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보고 의사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예기간이 짧으면 프로젝트를 미리 만들어 놓아야 하고, 유예기간이 길어진다면 현재의 프로젝트는 의미가 없어진다. 긴 시간이 흐른 뒤 계정 보완 작업 등을 다시 해야 하는 탓이다.
B 증권사 관계자는 “안정적인 전산 구축을 위해선 최소 6개월 정도의 개발 기간이 필요하다”며 “현재 민주당의 당대표 선거 결과와 선거 이후 금투세 기조가 또다시 바뀔지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인력과 자금 여유가 있는 대형 증권사는 금투세 시행을 가정한 투트랙 시나리오가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은 중소형 증권사 대부분은 눈치게임을 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