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사이버 레커(렉카)' 유튜버들의 협박 의혹이 연일 커지고 있습니다.
의혹은 모임 '렉카연합'에 소속된 일부 유튜버들이 먹방 유튜버 쯔양의 과거를 협박해 돈을 뜯어낸 정황이 통화 녹취 등을 통해 공개되면서 시작됐습니다. 이들은 논란이 커지자 일제히 사실이 아니라는 취지로 해명하고 나섰는데요. 그러나 쯔양 측이 고소장을 제출한 것은 물론, 관련 정부 기관들도 엄정 대응을 시사하고 나서는 등 논란은 일파만파 확산하는 중입니다.
대중의 눈초리도 매섭습니다. 개인의 아픈 과거를 손에 쥐고 협박, 금품을 갈취한 의혹에 대해 비판이 들끓고 있는데요. 사이버 렉카 유튜버들의 주 콘텐츠는 통상 '폭로'입니다. 대중의 관심사 또는 '정의구현'이라는 명분으로 특정인의 신상 등을 폭로해왔는데, 실상은 경제적 이익만을 좇은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지죠.
특히 구독자가 1040만 명에 이르는 대형 유튜버 쯔양이 피해를 입었다는 점은 사이버 렉카의 영향력과 우려와 관련해 경종을 다시금 울린 모양샙니다.
쯔양은 11일 새벽 진행한 라이브 방송에서 전 남자친구이자 소속사 대표 A 씨로부터 4년간 폭행과 협박, 금전 갈취를 당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앞서 그는 폭행, 폭행상습, 상습협박, 상습상해, 공갈(미수죄 포함), 강요(미수죄 포함), 통신매체이용음란 등 혐의로 A 씨를 형사 고소했는데요. 사건 진행 중 A 씨가 사망하면서 형사 고소는 불송치,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는 설명입니다.
쯔양이 잊고 싶었던 과거를 전한 건 앞서 올라온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의 영상 때문이었습니다. 가세연은 10일 유튜버 구제역의 휴대전화 속 1만7000여 건의 통화 녹취 파일 중 일부를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했는데요. 이 폭로 내용의 핵심은 '렉카연합' 소속 일부 유튜버들이 쯔양의 과거를 빌미로 협박해 돈을 갈취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세연이 공개한 녹취록 속 '렉카연합' 유튜버들은 "이번 거 터뜨리면 쯔양이 은퇴해야 한다",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게 낫다" 등의 대화를 나눴죠.
쯔양은 "어떤 방식으로도 이 일이 알려지는 건 원하지 않았다"고 상황을 설명, 눈시울을 붉혀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이후 쯔양을 협박해 돈을 갈취했다는 의혹을 받는 '렉카연합'이 화제의 중심에 섰습니다. 녹취록에 등장한 유튜버들은 강하게 의혹을 부인했는데요. 먼저 유튜버 카라큘라는 이날 "초저녁부터 몸살감기가 있어서 푹 자고 일어나니까 마치 제가 무슨 사적 제재로 뒷돈 받아먹은 사람이 돼 있다"며 "저는 두 아들을 걸고 유튜버로 살며 누군가에게 부정한 돈을 받아먹은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구제역은 "과거와 관련된 폭로를 막아달라는 쯔양 소속사 측 요청에 따라 같은 제보를 접한 또 다른 유튜버들에게 후원금을 주는 방식으로 폭로 영상 제작을 막아왔다"며 자신이 '이중 스파이'였다는 취지로 해명했죠.
이들은 황당한 행보로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카라큘라는 13일 되레 쯔양 측에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요청했고요. 구제역은 "쯔양에게 공갈 협박을 한 사실이 없다"며 15일 오후 돌연 검찰에 자진 출석했는데요. 전날 검찰은 구제역을 소환한 적 없다며 현재 사건이 배당 단계에 있고 소환조사는 수사 일정에 따라 진행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힌 바 있기에 조사를 거부했습니다.
지목된 유튜버들은 일제히 의혹을 부인하고 나섰지만, 쯔양 측은 15일 유튜버들에게 협박받은 사실을 인정하며 협박에 가담한 유튜버들을 고소했습니다.
쯔양의 법률대리인 태연법률사무소 김태연·김기백 변호사는 이날 쯔양의 유튜브 채널 커뮤니티에 입장문을 올리고 "유튜버 구제역, 유튜버 주작 감별사(전국진), 범죄연구소 운영자 및 익명의 협박자에 대한 고소장을 서울중앙지검 형사 제3부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전했는데요.
이들은 "(언급한 유튜버들에 의한) 공갈 사건이 발생할 당시 쯔양은 심신이 매우 피폐해진 상태였다"며 "금원 갈취 행위에 대응할 여력조차 없었으며, 그저 조용히 홀로 피해를 감당하면 되는 문제라고 생각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건이 공론화가 되는 과정에서 쯔양을 포함한 관계자 및 제3자들에게 무분별하게 2차 피해가 확대되기 시작했다"며 "깊은 고민 끝에 고소 진행을 결정했다"고 설명했죠.
쯔양 측에 따르면 현재 서울중앙지검 형사 제3부에는 법률대리인들의 고소 건과 별개로 이미 쯔양을 피해자로 기재한 고발장이 배당돼 있습니다.
여론이 들끓으면서 관련 정부 기관들도 엄정 대응을 시사하고 나섰습니다. 대검찰청은 이원석 검찰총장이 이날 사이버 렉카로 불리는 악성 콘텐츠 게시자들의 범행에 대해 엄정 대응하고 범죄수익 환수와 피해자 보호에 만전을 기하라고 전국 일선 검찰청에 지시했다고 밝혔는데요.
수익 창출을 위해 의도적으로 허위 콘텐츠를 게시하거나 반복적으로 지속해 범행한 경우, 피해자를 협박·공갈한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구속 수사하고 단순 명예훼손도 인격권 침해, 사생활 노출 등 피해가 큰 경우 원칙적으로 약식기소가 아닌 정식 재판에 넘기라는 등의 내용입니다.
이에 앞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11일 방송심의소위원회에서 "쯔양을 협박하고 갈취했다는 유튜버들이 언급되고 있는데,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콘텐츠로 돈을 버는 유튜버들에 대한 대책도 방심위 차원에서 마련해야 한다"고 류희림 위원장이 언급하는 등 우려를 제기한 바 있습니다.
파장이 커지면서 구제역, 카라큘라, 전국진 등 사이버 렉카 유튜버들의 수익화가 중지된 것으로 15일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유튜브는 관련 정책에서 타인에게 악의적으로 해를 입히려고 했거나, 학대 또는 폭력에 가담하거나 잔혹성을 보이거나 사기 또는 기만행위에 참여해 실질적으로 해를 입힌 경우 등 유튜브에 업로드하는 콘텐츠 외 플랫폼 안팎에서 부적절한 행위를 한 크리에이터에 대해 불이익을 줄 수 있도록 명시합니다. 특히 채널에서 광고 게재 및 수익 창출을 할 수 없게 될 수 있고, 유튜브 파트너 프로그램에서 제외돼 파트너 관리와 크리에이터 지원 등을 받지 못하게 될 수 있으며 스튜디오 콘텐츠 관리자에 대한 액세스 권한을 상실할 수도 있다고 밝히고 있죠.
돈줄까지 막히자, 관련자들은 일단 몸을 황급히 낮췄습니다. 전국진은 이날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에서 "지난해 2월 27일 구제역을 통해 300만 원을 (입막음 대가로) 받았다"고 인정하면서 "유튜브를 하면서 불순한 의도로 받은 처음이자 마지막 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2020년 11월 처음 쯔양 사생활에 대한 제보를 받고 나름대로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는데요. 당시에는 공론화할 생각이 없었지만, 2~3년 뒤 코로나19 여파로 생활고에 시달리던 와중에 그 제보가 떠올라 지난해 구제역에게 전화를 걸어 협박 모의를 하게 됐다는 설명입니다.
카라큘라는 이날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에서 '직접 돈을 받지 않았다'는 반박을 이어가면서도 대중과 쯔양을 향해 고개를 숙였습니다.
쯔양의 법률대리인 김태연 변호사는 1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중 스파이'였음을 주장한 구제역에 대해 "저희 입장과 완벽히 다르다"며 "쯔양이 다른 유튜버들을 막아달라고 먼저 요구할 이유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실제로 그런 유튜버들이 몇 명이나 존재했는지도 의문"이라고 짚었습니다.
이중 스파이와 관련된 계약서가 존재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더 확인을 해봐야 한다"면서도 "계약서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나중에 공갈 혐의가 드러났을 때 이런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던 걸로 보인다. 계약서 자체가 공갈이 아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죠.
김 변호사는 카라큘라에 대해선 "카라큘라가 직접 쯔양에게 연락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돼 우선 (고소 대상에서) 제외했다"면서도 "의심이 가는 부분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고 했는데요. 향후 조사 과정에서 의혹이 드러난다면 추가 고소를 할 수도 있다는 입장입니다.
사이버 렉카 유튜버들이 수많은 구독자를 끌어모은 건 이들의 폭로 콘텐츠 영향이 컸습니다. 이들은 범죄자의 신상정보를 가감 없이 공개하거나, 세간의 관심을 받는 사건 혹은 유명인의 의혹을 조명하는 듯한 사적 제재 콘텐츠로 인기를 끌었는데요. 이번 사태로 사이버 렉카 채널에서 횡행하는 사적 제재에 대해서 의문이 커진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한 네티즌은 카라큘라의 커뮤니티 글에 남긴 댓글에서 "쯔양 과거를 빌미로 협박해서 돈 뜯어내는 유튜버를 폭로했어야 올바른 행위 아니냐"며 "그런데 협박 피해자를 '황금 거위'라고 칭하면서 뒤에서 돈이나 뜯으라는 조언을 했다는 것 자체가 그간 이 채널에서 다룬 가해자들의 행위와 다를 게 없다. 그동안 사적 제재 응원했는데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사건"이라고 꼬집기도 했죠. 겉으로는 '정의구현'을 외치고 실상은 경제적 이익만을 좇은 게 아니냐는 겁니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도 YTN 라디오 '슬기로운 라디오생활'과의 인터뷰에서 "이 사람들(사이버 렉카 유튜버들)이 스스로는 '정의구현', '참교육이라고 말하지만, 실제 내용은 자신들의 수익 창출 이런 것들이 가장 주된 의도로 보인다"며 "특정 이슈를 맛보기로 폭로하고 여기에 관련된 사람이나 사건을 뒤에서 접촉한 후 '이것을 빼주겠다' 혹은 '이걸 안 하겠다'는 식으로 일종의 협잡, 압박을 해서 돈을 받고 눈감아주거나 '동영상을 만들겠다'며 '동영상 제작비를 내놔라' 이런 식의 방법을 쓰는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어 "(이 과정에서) 실제로 수익이 들어오는 과정 등을 명시한, 합법을 가정한 계약서를 쓴다더라. 협박에 의한 갈취를 합법적으로 위장하기 위해서 서로 간에 콘텐츠 제작 비용, 협업 비용, 공동 제작 비용 등으로 위장하는 것 같다"고 부연했죠.
이번 논란으로 플랫폼 차원에서 사적 제재 관련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동시에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수 있는 입법 논의의 필요성도 거론되는데요. 독일, 호주, 영국 등엔 이미 유해 콘텐츠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마련돼 있습니다.
일례로 2018년부터 시행된 독일의 네트워크 시행법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 혐오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인데요. 유튜브처럼 독일 내에서 200만 명의 이상의 사용자가 등록된 SNS 사업자는 사용자의 신고 후 24시간 이내에 명백한 불법 콘텐츠를 삭제, 차단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최고 5000만 유로의 과태료가 부과되기에, 유튜브도 독일에서 접수되는 각종 혐오 콘텐츠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죠.
'정의구현', '참교육', 그리고 '단죄'가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여겨지는 지금. 이번 협박 및 갈취 의혹은 사적 제재와 사이버 렉카 유튜버에 대한 경종을 다시금 울린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