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괴담회', '런닝맨', '미녀와 순정남'…
인기 TV 예능·드라마가 줄줄이 결방 소식을 전했습니다. 27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개막하는 제33회 파리 올림픽 여파인데요. 대신 현지 MC들이 전하는 주요 관심 경기부터 하이라이트 영상 등 올림픽 현장이 생중계될 예정입니다.
4년마다 한 번 찾아오는 대형 스포츠 이벤트인 만큼 방송사들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인데요. 일주일에 고작 두 번, 혹은 한 번 방송되는 프로그램을 보지 못하게 된 애청자들은 속 타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 드라마 결방 소식을 두고 아쉽다는 토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SBS 금토드라마 '굿파트너'인데요. SBS에 따르면 '굿파트너'는 26일 5회를 방영한 뒤 27일부터 다음 달 10일까지 결방합니다.
'굿파트너'는 '믿고 보는 배우'(믿보배) 장나라의 주연작인 데다가 시청률 상승세도 놀랍습니다. 7%대 시청률로 시작하더니 최근 방영분인 20일 4회는 13%대로 훌쩍 뛰었는데요. 그러나 갑작스레 파리 올림픽이라는 암초를 만나면서 3주 가까이 결방하면서 맥이 끊기게 됐죠. 일각에서는 결방이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이번 파리 올림픽으로 결방이 예고된 프로그램은 드라마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MBC 예능 '푹 쉬면 다행이야', KBS2 '불후의 명곡',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 '개그콘서트', '지코의 아티스트', MBC '심야괴담회', '복면가왕', '전지적 참견 시점', SBS '런닝맨', '미운 우리 새끼' 등 주요 예능들도 결방을 피하지 못했죠.
가장 큰 문제는 맥 빠지는 서사, 시청률 하락이 아닌 업계 종사자들의 생존권입니다.
통상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 기간엔 드라마를 포함한 다수의 TV 프로그램이 정상대로 방송되지 못합니다. 방송사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조치죠. 그러나 이 사태로 직접 피해를 보는 방송 스태프들이 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9월 발행한 '방송프로그램 결방 피해 실태와 쟁점' 보고서에 따르면 방송프로그램 결방에 대한 스태프 설문 조사 결과 결방·불방 경험률은 24.3%에 달했습니다.
연구진은 지난해 7월 방송 제작 인력 920명과 이들이 참여한 1720개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결방 실태를 조사했는데요. 결방된 프로그램 종류는 교양이 46.4%로 가장 많았으며, 예능 41.4%, 드라마 8.1%가 뒤를 이었습니다.
결방 원인은 방송 제작·재정 문제가 34.9%였으며, 스포츠 중계는 25.8%를 차지했죠. 다수 스태프는 결방 사실을 사전에 고지받지 못했습니다. 결방 안내 시점을 물었더니 '프로그램 제작 중'이라는 응답이 과반에 가까운 43.7%에 달했으며 프로그램 납품 후 결방을 통보받은 경우도 15.3%로 나타났죠. 방송 제작 전 결방 통보를 받은 스태프는 32.5%였습니다.
특히 1년간 결방으로 인해 임금 손실을 경험한 스태프는 21%(평균 328만 원), 노동시간 손실을 기록한 스태프는 25.9%(평균 61시간)로 나타났습니다. 소득 창출 기회를 잃었다고 느끼는 스태프는 무려 57.6%였죠.
20년 차 예능 작가는 연구진과의 인터뷰에서 "서브 작가의 경우 회당 50만~60만 원, 한 달 기준 200만~300만 원 받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결방되면 최저임금도 못 받는 달이 허다해진다"고 토로했습니다.
드라마 작가를 제외하면 방송 작가 원고료는 통상 방송 이후 이뤄집니다. 이때 방송이 결방하면 대부분이 일해놓고도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하는 건데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1월 지상파 3사 등 방송사 결방으로 인한 피해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같은 달 10~15일 방송 외주제작 스태프 총 377명을 대상으로 방송사 결방에 따른 피해 실태를 점검한 결과에서도 응답자 81.2%가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10명 중 8명이 결방에 따른 피해를 경험했다는 건데요. 결방 기간임에도 결방 프로그램과 관련된 업무를 한 경험은 응답자의 76.5%가 '있다'라고 답했고, 이들 중 92.7%가 그에 대한 보수를 받지 못했다고 응답했습니다.
연구진은 권익 증진 마련을 위한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실태 파악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SBS 금토드라마 '굿파트너'는 이혼이 '천직'인 스타 변호사 차은경(장나라 분)과 이혼은 '처음'인 신입 변호사 한유리(남지현 분)의 차갑고 뜨거운 휴먼 법정 오피스 드라마입니다. 실제 이혼 전문 변호사가 집필해 생생하면서도 몰입감 넘치는 스토리에 주연 장나라와 남지현의 호연, 티격태격하면서도 따뜻한 워맨스 호흡으로 안방극장을 홀렸습니다.
매회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가파른 시청률 상승세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7.8%(닐슨코리아, 전국 유료 가구 기준)로 순항을 시작하더니 3회 만에 10%를 넘고, 최근 방영된 4회는 13.7%를 기록하면서 2배 가까이 뛴 시청률을 보여주고 있죠. SBS 금토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커넥션'의 자체 최고 기록인 14.2%와 겨우 0.5%포인트(p) 차이입니다.
주말드라마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했을 뿐 아니라 화제성도 뜨겁습니다. 23일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발표한 7월 3주 차 TV-OTT 드라마 화제성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굿파트너'는 1위를 차지했습니다. 방송 첫 주 대비 화제성이 68.9% 큰 폭으로 증가하며 방송 2주 만에 1위에 등극한 겁니다. 2위는 지난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 시즌3'가, 3위는 JTBC '놀아주는 여자'가 차지했습니다. 7월 3주 차 조사는 15일부터 21일까지 방송 또는 공개 중이거나 예정인 TV드라마와 OTT 오리지널 드라마 그리고 각 프로그램에 출연한 출연자를 조사 대상에 포함했습니다.
특히 '굿파트너'는 장나라의 SBS 복귀작으로도 관심을 모았는데요. 그는 SBS에서 '황후의 품격', 'VIP'를 잇달아 흥행시킨 바 있습니다. 각각 자체 최고 시청률 17.9%, 15.9%를 기록했는데요. 그러나 이후 '오 마이 베이비', '대박부동산', '패밀리'를 포함해 결혼 후 첫 작품이었던 '나의 해피엔드'마저 저조한 시청률과 함께 종영, 줄줄이 흥행에 실패했죠. 그러던 중 만난 '굿파트너'에서 남편의 불륜으로 흑화하는 캐릭터를 맡으면서 흥행 기지개를 켠 참이었습니다. 서사도 탄력을 받으며 시청자들 사이 입소문까지 나기 시작한 상황이었죠.
그러나 이번 주 개막을 앞둔 파리 올림픽 중계 여파로 직격타를 맞게 됐는데요. SBS에 따르면 '굿파트너'는 26일 5회를 방송하고 다음 달 16일이 돼서야 6회로 돌아옵니다. 3주에 달하는 기간 5회분이 결방되는 건데요. 아직 4회밖에 방송되지 않은 극 초반부에서 장기간 결방하면서 고정 시청자층을 확실하게 잡아둘 수 있을지 우려가 커집니다. 특히 장나라가 남편 지승현의 외도를 알고 이혼을 결심하는 한편, 남지현에게 변호를 맡기며 완벽한 공조를 그려나가기 직전인 상황이라 시청자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더욱 커졌죠.
게다가 비슷한 시간 방송되는 주말드라마 JTBC '낮과 밤이 다른 그녀', tvN '감사합니다'는 최신 회차에서 각각 시청률 9.4%, 7.3%라는 호성적을 썼습니다. 이 같은 경쟁작에 시청자를 내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사실 SBS는 잦은 결방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지난해 8월 첫 방송된 목요드라마 '국민사형투표'는 박해진, 임지연, 박성웅 등 연기파 배우들의 출연으로 많은 화제를 모았는데요. 첫 방송에서 시청률 4.1%를 기록하면서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습니다. 악질범을 대상으로 국민사형투표를 진행하고 사형을 집행하는 신원 불명 '개탈'을 추적하는 이야기를 담으면서 신선한 소재, 시원한 전개 속도로 인기를 끄는 듯했죠.
그런데 한여름 방송을 시작한 이 드라마는 11월 중순이 돼서야 종영했습니다. 주 1회 편성된 탓도 있지만,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2023 KBO리그 플레이오프 중계방송 등으로 세 차례 결방해야 했던 겁니다. 여기에 태풍 카눈 관련 뉴스 특보, 항저우 아시안 게임 축구 중계로 두 차례 방송 지연이라는 악재까지 맞았습니다.
이는 시청률에 고스란히 반영됐습니다. 결방 전까지 3~4%대의 시청률을 유지하던 드라마는 지난해 9월 28일과 10월 5일 2주 연속 결방 후 방송된 8회에선 2%대로 추락했는데요. 자체 최고 시청률은 1회의 4.1%로 기록되면서 아쉬움을 더했죠.
2019년 방송된 수목드라마 '시크릿 부티크'는 무려 6차례 결방하며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자아냈습니다. 김선아, 장미희 등 '믿보배'들을 내세워 국내 최초 '레이디스 누아르' 장르를 선보이겠다는 야심 찬 포부 아래 방송을 시작했지만, 2019 KBO리그 포스트시즌 경기 중계, 2019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 12 중계, 제40회 청룡영화상 생중계로 수차례 결방했는데요. 시청률이 반토막 나는 부진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결방에 이유라도 있으면 다행일까요. 남궁민 주연의 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는 방송 3회 만에 1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흥행 대박을 쳤는데요. 극 후반부 들어선 이유 모를 연속 결방을 이어가면서 시청자들을 분노하게 했습니다. 8회에서 자체 최고 시청률 15%를 기록한 상황에서, 9회를 갑자기 결방한 데 이어 지난해 10월 28일과 11월 4일까지 3주 연속으로 금요일 방송을 결방한 겁니다. 주 2회 방송돼야 할 금토드라마가 순식간에 토요드라마가 된 기막힌 상황이었죠.
결방을 거듭한 후 시청률은 9회에서 14.6%, 10회에선 13.7%, 11회에선 13.6%로 야금야금 줄어들었습니다. 최종회에서 15.2%로 자체 최고 기록을 쓰며 종영하긴 했으나, 결방이 아니었더라면 더 높은 시청률도 기대해볼 법한 상황이었습니다.
심지어 14부작으로 예정돼 있던 드라마는 12부작으로 조기 종영했습니다. "빠른 전개와 완성도를 위한 결정"이라는 것 외에 명확한 사유는 밝혀지지 않았는데요. 일각에선 제작사와 작가 사이 불화설을 제기했죠.
SBS 측은 불화설에 대해 "제작사와 작가 양측 확인 결과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그었는데요. 김재현 PD는 종영 인터뷰에서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처음이었지만, 마음과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일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는 의미심장한 말로 이목을 끌었습니다.
한편, 드라마·예능 등의 결방은 이처럼 작품뿐만 아니라 시청자와 스태프에게까지 피해를 끼칠 수밖에 없는데요. '대형 스포츠 이벤트 여파에 의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해명보다는 체계적인 제도 개선을 위한 고민이 이뤄져야 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