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연금개혁, 출발부터 잘못됐다 [연금개혁의 적-上]

입력 2024-08-04 13:42수정 2024-08-0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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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연금 전문가는 국회 연금개혁 특별위원회(연금특위)가 민간자문위원회를 구성한 순간부터 연금개혁 실패가 예견됐다고 지적한다. 전문가그룹이 소득 보장파와 재정 안정파로 양분돼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려는 연금개혁 논의가 소득대체율 논쟁으로 변질했기 때문이다.

본지가 2022년 이후 보건복지부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에 참여했던 연금 전문가 10여 명을 인터뷰한 결과, 전문가들은 대체로 연금개혁 논의구조를 연금개혁 실패의 원인으로 꼽았다. 단일안 도출이 가능한 구조였다면 그 결과물을 국회가 수용하면 되는데, 애초에 단일안이 나오기 불가능한 구조였다는 것이다.

출발은 김연명·김용하 민간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 임명이다. 소득 보장파인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공적연금 강화 국민행동(연금행동)’ 발족의 주역이다. 참여연대가 만든 ‘국민연금 바로세우기 국민행동’의 후신인 연금행동은 양대 노동조합총연맹과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연대체다. 김용하 순천향대 정보기술(IT)금융경제학과 교수는 대표적인 재정 안정파로 여당인 국민의힘과 이해관계를 공유한다.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비례정당인 미래한국당에 공천을 신청했으며, 이후 국민의힘 의원들의 ‘연금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두 공동위원장은 애초에 연금개혁에 적극적일 이유가 없었다는 게 연금개혁 논의 참여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김연명 교수는 문재인 정부 연금개혁의 책임자(대통령 사회수석비서관)인 데다 연금행동의 이해관계를 벗어난 타협은 사실상 주도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몫 연금 전문가로 활동하는 김용하 교수는 연금개혁에 소극적인 현 정부·여당과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다.

두 위원장을 제외한 전문가들이 주도적으로 개혁안을 논의하기도 어려운 구조였다. 김연명·김용하 공동위원장 체제에서 연금개혁 논의는 김연명 교수 안(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과 김용하 교수 안(보험료율 15%, 소득대체율 40%)의 대결구도가 됐다.

특히 연금특위 최종 보고에서 두 공동위원장은 민간자문위원회 보고서가 아닌 각자의 개혁안을 제출했다. 그 결과로 수지 균형론(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신·구연금 분리론(이강구·신승룡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기초·퇴직연금 보완론(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국고 투입·수익 제고론(김우창 카이스트 산업·시스템공학과 교수), 퇴직연금 활용론(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등) 등 대안적 제안들은 배제됐다. 대다수 전문가는 상대적으로 재정 부담이 작은 김용하 교수 안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 나온다.

오 위원장은 “나는 기초·퇴직연금 보장성 및 크레딧 확대를 주장하는 소득 보장파”라며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향은 반대하기에 김용하 교수 안을 지지한 것인데, 그것만으로 재정 안정파란 딱지가 붙었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재정 안정파로 분류되는 한 대학 교수는 “재정 안정 측면에서 가장 강한 목소리를 내는 전문가는 윤석명 박사이고, 재정 안정을 강조하는 다른 전문가도 많다”며 “그런데 그분들은 애초에 논의 테이블에도 들어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은 공론화위원회 시민대표단 숙의토론까지 이어졌다. 숙의토론 의제는 김연명 교수가 제시한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 안과 김용하 교수 안을 수정한 ‘보험료율 12%, 소득대체율 40%’ 안으로 압축됐다. 시민대표단에는 양자택일이 강요됐다. 윤 명예연구위원은 “연금특위 초반에는 방향성 없이 이것저것 중구난방으로 논의됐고, 후반에는 두 공동위원장의 제안만 남겼다”며 “재정 안정화 방안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는 거의 없었다”고 비판했다.

급기야 일부 전문가들은 민주당이 마지막에 절충안으로 내놓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4%’ 채택을 촉구했다. 보험료율 인상을 미뤄선 안 된다는 취지였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장 어려운 보험료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5%포인트(P) 이내 소득대체율 상향은 받아들일 수 있다고 봤다”며 “그 자체로 개혁이 종결되는 것이 아니고, 추가 개혁이나 기초연금 수급범위 조정을 통해 소득대체율 충격을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야는 애초에 연금개혁 의지가 없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국민의힘은 돌연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며 모수개혁 논의 종결을 선언했다. 민주당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4%’ 안을 밀어붙이는 듯했으나,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발의하진 않았다. 윤 명예연구위원은 “애초에 민간자문위원회를 그렇게 구성한 것 자체가 시간만 끌겠다는 증거”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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