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2022년 이후 국내에서 사무라이본드를 발행한 기업은 대한항공, 현대캐피탈, 신한은행, 한국투자증권, 네이버 등이다. 대한항공과 한국투자증권은 각각 2022~2023년과 2023~2024년으로 2년 연속 사무라이본드를 찍어내기도 했다. 대한항공은 2022년 1월과 2023년 6월에 걸쳐 총 500억 엔(한화 약 4553억 원) 규모를 조달했고, 한국투자증권은 총 300억 엔(한화 약 2733억 원)을 끌어왔다.
특히 국내 금융사 사이에서 사무라이본드 발행이 줄을 이었다. 시장 금리가 급등하면서 대폭 불어난 채권평가손실을 메꿀 목적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신한은행은 국내 시중은행 중 약 5년 만에 다시 사무라이본드 발행에 나섰고, 현대캐피탈의 사무라이본드 발행은 2019년 이후 3년 만이다. 한국투자증권도 이 시기 국내 증권사 최초로 사무라이본드를 발행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S&P(스탠다드앤드푸어스)는 지난 3월 한국투자증권의 신용등급 전망을 기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신용등급 강등은 조달금리 상승 부담을 키우는 요인으로 사무라이본드로 자금을 조달하면 그나마 금리 레벨을 낮출 수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부동산 경기 둔화에 따른 해외 대체투자와 국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익스포저 규모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도 이 시기 엔화로 자금을 조달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엔화 표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700억 엔을 발행했다. 당초 200억 엔만 발행할 예정이었으나 3·5·7·10년 만기로 나눠 대폭 증액했다. 한국 정부가 달러화나 유로화가 아닌 엔화 표시 외평채를 발행한 것 역시 처음이다.
사무라이본드는 외국 정부나 기업이 일본 내 투자자를 대상으로 일본에서 발행하는 엔화 표시 채권을 말한다. 2022년 이후 전 세계 주요국의 고금리 기조로 자금 조달 여건이 팍팍해진 가운데 일본만은 초저금리를 유지하면서 사무라이본드 발행 수요는 크게 늘었다. 유례없는 엔저 현상이 장기화하면서 저금리 기조가 지속할 것이란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문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중심으로 글로벌 금리 인하 기대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일본은행이 나홀로 금리 인상으로 돌아선 것이다. BOJ는 전일 금융정책위원회에서 25bp(0.01%=1bp) 기준금리 인상 단행했다. 지난 3월 마이너스 금리 해제를 선언한 뒤 첫 추가 인상이다. 일본 기준금리가 연 0.25%로 오른 것은 2008년 12월(0.3%포인트 안팎) 이후 약 16년 만이다.
국채 매입 규모도 축소한다. 월 6조 엔 수준이었던 국채 매입 규모도 매 분기 4000억 엔 수준으로 줄이기로 했고, 2026년 1분기에는 절반 수준인 2조9000억 엔까지 줄여나갈 예정이다. 이로 인해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52엔대까지 하락하며 엔화 가치는 크게 올랐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가 줄어들 것으로 판단한 시장에서 엔 매수 움직임이 확산한 것이다.
일본 당국은 이번 금리 인상으로 추가 엔화 약세는 방어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했고, 시장에서도 일본의 엔저(엔화 약세) 기조 전환, 내수 회복 기대 등으로 하반기부터 엔화 강세가 나타날 것으로 무게를 싣고 있다. 엔화 강세가 나타나면 사무라이본드를 통해 엔화 자금을 조달했던 기업들은 원리금 부담이 커지게 된다.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일본 내 조달금리가 오를 뿐 아니라 일본투자자들이 기존에 사무라이본드를 발행했던 선진국 대비 신흥국인 한국 기업에 대해 냉랭한 투자심리를 보이면 한국기업들은 더 비싼 이자를 얹어줘야 새 채권을 발행해 갚는 차환이 가능해진다. 제로금리 시기 엔화 표시 채권 발행을 늘린 것은 한국만이 아니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사무라이본드 발행액은 약 8500억 엔(한화 약 7조7300억 원)으로 4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미국 결제업체 페이팔, 프랑스 금융그룹인 BPCE 등을 비롯해 워런 버핏이 이끄는 미국 투자회사 버크셔해서웨이도 1664억 엔 규모로 사무라이본드를 발행했다.
미 연준이 인하를 시작하더라도 현재 수준에서 크게 내려오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는 가운데 일본의 금리 인상까지 시작되면서 더는 한국시장이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은 이도 저도 없이 양쪽 다 막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연준이 당장 오는 9월부터 시작해 연말까지 총 3차례 금리인하를 단행하더라도 미국 기준금리는 4% 초반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