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사에 새로운 통일담론을 제시한 반면 ‘일본’과 과거사 언급 등이 빠져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대통령실은 우리나라가 과거와 달리 일본과 대등한 국가로 성장한 만큼 한일 관계에 대한 자신감이 반영됐다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선 광복절이었던 만큼 과거에 대한 문제도 언급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윤 대통령은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자유’를 가장 많이 언급했다. 반면 ‘일본’‧‘일제’는 단 1~2회 언급됐다. 일본이 언급된 건 윤 대통령이 “작년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은 처음으로 일본을 넘어섰고, 2026년 4만 달러를 내다보고 있다. 올해 상반기 한국과 일본의 수출 격차는 역대 최저인 35억 달러를 기록했다”고 말한 부분이다.
과거사와 관련된 발언은 서두 부분에서 “국권을 침탈당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국민은 참으로 위대한 역사를 써내려 왔다”며 ‘국권 침탈’을 언급한 정도다.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일본을 향해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라며 진전된 한일 관계를 언급한 것을 감안하면 과거사는 물론 한일 관계에 대한 발언도 전무했다.
대통령실은 이에 “한일 관계를 지적하지 않았지만, 한일 관계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대한민국이 그동안 자유 가치를 기반으로 꾸준히 경제 성장을 해오며 일본과 대등하게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는 함의가 있다”고 부연했다.
특히 일본을 극본하는 ‘극일’(克日) 성과를 내고 있는 만큼 과거사나 한일 관계를 대하는 접근법 자체가 달라졌다는 입장이다.
다른 핵심 관계자도 “일제시대 자유를 향한 독립운동과 국민소득 등에서 일본을 뛰어넘는 극일을 하는 스토리를 언급했다”며 “일본을 향해 우리나라 국민이 자신감이 생겼고 2030세대 57%가 일본에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과거 잘못에는 당당히 지적하되 통일로 가는 데 있어서는 일본과 협력할 것은 협력하겠다는 메시지”라고 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통일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이고, 그만큼 한일 관계의 비중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며 “미래 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고려한다는 관점에서는 과거사에 집중한 한일 관계만 강조하는 것도 안 좋을 수 있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광복절 경축사인 만큼 과거사 문제에 대한 언급이 필요하지 않았냐는 지적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당당한 이미지, 대등한 한일 관계를 부각한다는 점이 이해가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복절은 일본의 과거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과거사 언급을 하는 것이 좋을 뻔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봤다.
정치권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왔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이날 CBS라디오에 “지금 일본과 어느 정도 유화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긴 하지만, 역사적인 부분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역사 문제에 대해 솔직하게 언급하고,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것이 가치가 있는 일인데 빠져서 아쉽다”고 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조선총독부가 용산 대통령실로 부활했다. 광복절이 친일세력이 마음껏 날뛰는 친일부활절로 전락한 책임은 모두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다만 대통령실은 야당의 날선 비판에 “윤석열 정부는 말로만 죽창가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일본을 극복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며 “역사상 처음으로 작년에 1인당 국민소득은 일본을 추월했고 올해 상반기 수출도 35억 달러로 역사상 최소 격차로 줄었다. 어떤 것이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인지 국민이 잘 판단할 것으로 본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