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은 너희에게만 날뛴다
○○묶자
영원불멸 백년가약
왠지 모를 섬뜩함이 느껴지는 이 문구. 이 문구에 친숙함을 느끼셨다면, 풍선 꽤나 흔들었던 과거가 떠오르실 텐데요. 그때 그 시절, 직접 몸으로 부딪혔던 ‘팬덤 신경전’의 최고봉, ‘드림콘서트’ 현장에서 말이죠.
전국의 모든 팬을 조퇴를 불사하게 하고, 몇 주 전부터 무통장으로 입금 완료한 버스 대절을 통해 속속 잠실 주경기장으로 모이게 했던 드림콘서트. 많은 이야기가 쌓인 드림콘서트가 어느새 30주년을 맞았습니다.
한국연예제작자협회(연제협)가 주최하는 연합자선콘서트인 드림콘서트는 1995년 처음 시작됐는데요. 앞서 환경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열리던 공개 콘서트를 연제협이 참여하며 그 규모를 늘렸죠.
국내외 정상급 아티스트가 모두 총출동했던 드림콘서트는 K팝 콘서트의 원조격인데요. 이번에는 30주년을 맞아 드림콘서트를 빛낸 최고의 아티스트를 뽑는 팬 투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1위에 오른 아티스트는 30주년 무대인 ‘2024 드림콘서트’에서 시상식과 함께 스페셜 스테이지에 오를 예정인데요. 1세대, 2세대 아이돌이 드림콘서트 무대에 등장하게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죠.
치열한 예선을 거쳐 결선에 오른 25개 팀을 대상으로 29일까지 마지막 투표를 진행합니다. H.O.T.(에이치오티), god(지오디), 은지원, 이민우, 동방신기, SS501(더블에스오공일), 슈퍼주니어, 보아, 샤이니, 방탄소년단(BTS) 등 K팝의 역사를 써 내려 간 이들이 모두 경쟁 중이죠.
하지만 드림콘서트의 진정한 주인공은 출연 가수가 아닌 팬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드림콘서트를 ‘큰 축제’이자 ‘최대 격전지’로 만든 주역들이죠. 매년 5~6월이면 이 드림콘서트 참석을 위해 전국 팬클럽이 분주했는데요. 이들의 단결력(?)과 전투력(?)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습니다.
유혈사태가 난무했던 1세대 아이돌 H.O.T.와 젝스키스(젝키)의 대결이 시작이었는데요. 그야말로 ‘너 죽고, 나 죽고, 다 죽여버리겠다’의 마인드가 팽배했죠. ‘내 가수’가 제일 중요, 그 외에는 그저 ‘배척’하는 살벌한 현장이었는데요. 타 가수가 소개되거나 등장할 때 침묵을 고수하거나 야유를 퍼붓기도 했죠. 심지어 ‘우리 오빠’의 스캔들 대상이 나오게 되면 마이크보다 더 큰 소리로 욕설이 난무하기도 했습니다. 다수의 여그룹과 여가수가 응원보다 “꺼져라”를 먼저 맞이하게 되는 일도 다수 벌어졌죠.
이런 분위기 속 유혈사태는 당연한 수순이었는데요. 서로의 파워와 결속력을 과시하며 얼린 생수나 수박을 수류탄처럼 투척하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몸으로 부딪혔죠. 이 유혈사태로 매번 입원 환자가 생겨났는데요. 그만큼 뜨거웠던 현장임을 보여주는 사례죠.
가장 치열했던 경쟁은 바로 ‘3층’을 누가 차지하는가인데요. 잠실 주경기장 3층은 콘서트 좌석으로 따지자면 ‘가장 싼’ 좌석이지만, 드림콘서트에선 ‘가장 비싼’ 좌석이 되었습니다. 물론 무료로 운영된 콘서트이기에 돈이 들진 않았지만, 그 3층 좌석을 차지하기 위해 ‘미리 도착’하는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했죠. 물론 이미 연매협과 협의한 팬클럽간의 좌석 배분이 이뤄지긴 했지만, 당일 얼마나 많은 팬이 도착하느냐가 관건이었습니다.
3층 좌석의 가장 넓은 면으로 퍼져 있어 ‘내 가수’, ‘내 오빠’에게 가장 잘 보이는 좌석인 데다가, 그 세를 보여주기에 그만한 좌석이 없었는데요. 거기다 앞서 설명한 무시무시한 현수막을 걸기에도 가장 용이했습니다. 드림콘서트에 참여한 가수들 또한 드림콘서트를 회상할 때 “3층에 우리 팬들이”, “3층에 하늘색 풍선이 가득”이라고 설명할 정도였으니 그 중요성을 알만하겠죠?
드림콘서트에서 해체 무대를 가진 젝키가 2000년 상징색인 노란색 풍선을 가득 채웠던 때를 제외하곤, 라이벌인 H.O.T.의 기세를 당해낼 수 없었는데요. 드림콘서트를 거의 자신들만의 단독콘서트로 만들 정도로 3층과 2층 등 대부분 자리를 채웠습니다.
이후에는 god가 그 뒤를 이었는데요. 2000년부터 2003년까지 팬석 6만 석 중 60% 이상을 god 팬클럽 팬지오디가 하늘색 풍선으로 뒤덮었습니다. 물론 무시무시한 현수막도 함께 말이죠. god와 함께 그 시절 인기가수였던 신화, 핑클, SES, 클릭비, 조성모, 보아 등도 자신들만의 팬클럽 좌석을 채우고 목 놓아 ‘내 가수’를 외쳤습니다.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던 드림콘서트 팬덤 싸움은 2008년께부터 다시 발발했는데요. 다수의 남자아이돌과 여자아이돌이 대거 등장했고, 과거보다 탄탄한 팬클럽 체계를 갖추고 등장한 터라 엄청난 신경전이 벌어졌습니다. 일명 카트엘이라고 불렸던 남자 아이돌 3그룹(동방신기, SS501, 슈퍼주니어)의 팬클럽명인 카시오페아, 트리플에스, 엘프가 심상치 않았는데요. 드림콘서트 좌석 대부분을 차지한 카트엘이 2008년 소녀시대 무대에서 약 10분간 야광봉을 내려놓고 침묵하는 사태가 벌어졌죠.
카트엘이 차지한 좌석은 약 5만5000석으로 이들이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침묵의 콘서트가 자명했는데요. 그간 소녀시대의 방송 활동 속 ‘버릇없는 행동’을 꼬집으며 버릇을 고쳐놔야 한다는 여론이 카트엘을 중심으로 퍼지게 된 것이 이유입니다. 물론 자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가수를 응원하지 않는 건 개인의 자유일지 모르지만, 집단으로 움직였다는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이후 많은 비판이 흘러나왔고, 드림콘서트 ‘흑역사’로 남아있죠.
2010년 중반 이후부터 드림콘서트의 라인업이 약해졌다는 평가가 흘러나왔는데요. 해외 진출 가수들이 많아지고 수익 창출 경로가 넓어진 현재, 드림콘서트는 그야말로 ‘자선콘서트’인데다 중계 또한 케이블로 넘어가면서 명성이 많이 약해졌죠.
하지만 여전히 그 역사를 함께하는 팬클럽 대전은 이어지고 있죠. 이번 ‘최고의 아티스트’를 뽑는 투표 행사 또한 그 팬덤의 힘을 노려보고자 하는 의도인데요.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면면의 가수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는 것만큼 팬들의 신경전이 곧추세워질 일이 없기 때문이죠.
당혹스러운 현수막 또한 선배들의 뒤를 이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데요. 요즘은 얼마나 기발한 문구로 시선을 사로잡느냐가 더 큰 쟁점이 되고 있죠. 공연 후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어떤 팬클럽의 문구가 가장 기발했느냐로 토론이 벌어지곤 합니다.
버스대절, 무통장입금, 조퇴, 땡땡이, 은행 줄서기, 유혈사태. 공포의 단어들로 점철된 ‘언니들 싸움’을 거친 그 시절 팬들은 현재 어엿한 사회인, 어머니가 되어있을 텐데요.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를 외칠 수 있는 강력했던 언니들의 오빠가 30주년 무대에 등장할 수 있을지… 10월 19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개최될 드림콘서트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