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주의 컷] 전도연 주연의 영화 ‘리볼버’를 위한 변명

입력 2024-08-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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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볼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올해 여름 기대작이었던 전도연 주연의 ‘리볼버’가 29일 기준 누적관객수 25만 명 정도를 동원하는 데 그치며 흥행에 실패했다. 전도연 외에도 지창욱, 임지연 등 인기 배우들이 출연했지만,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네이버 기준 관객 평점이 6점대 초반인데, 대체로 “내용도, 화려한 액션도 없다”, “재미, 긴장감, 메시지가 없다” 등 혹평이 쏟아졌다. ‘리볼버’에 제기된 비판 대부분이 ‘없다’라는 형용사로 귀결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렇다. ‘리볼버’에는 범죄 장르에 꼭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요소들이 없다. ‘초록물고기’(1997, 이창동), ‘달콤한 인생’(2005, 김지운), ‘부당거래’(2010, 류승완) 등 갱스터 영화는 주로 범죄 조직 내부의 암투를 그리는데, 대부분 남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여성은 팜므파탈 정도로 소비된다. 남성 주인공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총격 등 박진감 넘치는 액션은 갱스터 영화의 주요한 장르적 재미다.

하지만 ‘리볼버’의 주인공은 남성이 아닌 여성이다. 김혜수 주연의 ‘차이나타운’(2015) 정도를 제외하면, 한국 상업영화에서 여성이 주인공인 갱스터 영화는 드물다. 전도연이 연기한 ‘하수영’이라는 인물은 대신 감옥을 다녀오는 조건으로 거액을 받기로 했지만, 그것이 좌절되면서 방황한다. 그는 돈을 주기로 약속한 ‘앤디’(지창욱)을 찾아 떠나는데, 그 떠남의 동기가 ‘복수’보다는 ‘생활’에 가깝다. 하수영의 발걸음에는 감정적 앙갚음이나 거창한 대의가 없다.

하수영은 받기로 한 돈을 받아야 한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출소 후 하수영이 앤디를 처음 만나는 장면도 흥미로운데, 그는 앤디를 총으로 겁박하는 대신 회초리를 든다. 하수영은 호신용 삼단봉으로 앤디를 가격한다. 이 장면은 마치 까칠한 누나가 철없는 거짓말쟁이 남동생을 훈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통쾌하기보다 어딘가 모르게 코믹하다. 영화 후반부에 그려지는 숲속 총격 장면 역시 긴장감보다는 헛웃음을 자아낸다.

요컨대 이 총격 장면이 흥미로운 이유는 ‘적중’이 아니라 ‘불발’에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일반적인 갱스터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냉철하지도, 치밀하지도 않다. 누군가를 간단히 쏴죽일 만큼 잔혹하지도 않다. 두려움과 허세, 장난으로 가득한 잡범 수준의 양아치들이다. 쏘아야 할 대상을 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데, 헛웃음으로 점철한 총격 장면이 장르의 공식을 절묘하게 회피하며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좋게 말하면 이른바 ‘삑사리 전략’이다.

▲영화 '리볼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하수영의 조력자가 남성이 아닌 임지연이 연기한 ‘정윤선’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정윤선이 하수영을 돕는 명분은 ‘그냥’, ‘불쌍해서’ 등의 이유로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지 않다. 이중 스파이 노릇을 하는 정윤선은 하수영에게 비밀로 해야만 하는 사안을 아무렇지도 않게 발설하면서 헛웃음을 유발한다. 그러면서 막판에 하수영의 모든 것(everything)이 좋다고 말한다. 이처럼 두 사람의 관계는 묘한 퀴어적 정서를 자아내며 한국판 델마와 루이스를 연상케 한다.

말하자면 ‘리볼버’는 배신과 음모, 폭력을 주요 소재로 하며 범죄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 일침을 날리는 영리한 갱스터 영화라기보다는 받아야 할 돈을 받기 위해 떠나는 한 여성의 로드무비에 가깝다. 이 로드무비에는 ‘거창한 이데올로기’ 대신 ‘처절한 생활’이 있다. 결국 돈을 받아낸 하수영이 한 부둣가에서 소주를 털어 넣는 장면에는 남성들의 암투에 놀아났던 팜므파탈의 쓸쓸함이 아닌 밀린 월급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한 생활인의 고단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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