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A 씨. 서울시의 기후동행카드를 찍고 빈자리에 앉습니다. A 씨의 무릎에는 점심 도시락이 놓여 있는데요. 점심값을 아끼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아침에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잠을 깨울 커피는 저가형 프랜차이즈 매장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선택합니다. 작은 사이즈를 사면 1200원이라, 오전에 마시기 합리적인 가격입니다.
퇴근한 B 씨는 곧장 삼각지로 향합니다. 친구들을 만나 요즘 핫하다는 파인 다이닝에서 저녁을 먹습니다. '미셸린(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4'에도 선정된 맛집이죠. 새우로 만든 에피타이저부터 생선 요리, 한우 스테이크 등으로 구성된 코스 요리를 주문합니다. 여기에 추천받은 와인까지 곁들이니 인당 20만 원이 훌쩍 넘는데요. 개의치 않습니다. 훌륭한 맛과 좋은 분위기를 즐긴 데다가 친구들과 재밌는 수다까지 떨었거든요.
극과 극의 소비 행태인가요? 사실 A, B 씨는 같은 인물입니다. 마치 지킬과 하이드 같은 양면적인 소비는 최근 젊은 세대의 대표적인 모습 중 하나입니다. 아낄 땐 극한으로 아끼더라도 즐길 땐 즐기는 '앰비슈머'(양면성·ambivalent+소비자·consumer)라고 부르곤 하죠.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부분은 '디저트'입니다. 누구를 만나든 밥을 먹고 카페에 가는 건 하나의 루틴으로 굳어졌는데요. 점심으로는 도시락을 싸서 다녀도 수만 원짜리 디저트에는 쉽게 지갑을 열곤 합니다.
이런 소비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공략한 건 호텔업계입니다. 매년 시즌별로 특별한 디저트를 선보이는데요.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경, 디저트의 달콤한 맛과 화려한 비주얼, 인증샷 찍기 좋은 인테리어까지 삼 박자가 어우러져 기분을 내러 갈 때 딱 맞죠.
매년 겨울과 봄 사이에는 딸기 디저트가 준비됩니다. 그리고 여름에는 망고 빙수가 큰 인기를 끌죠. 가을에는 밤과 꿀, 무화과 등을 사용한 달콤한 디저트를 출시하곤 합니다.
조선 팰리스의 베이커리 조선델리 더 부티크에서는 프리미엄 시즌 디저트로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출시했습니다. 제철 딸기의 달콤함에 부드러운 생크림 시트가 더해져 인기를 끌었는데요. 아이스크림은 겨울에 먹어야 제일 맛있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1914 라운지&바에서는 셰프가 엄선한 고당도 딸기 빙과에 천연 과육을 듬뿍 올린 '시그니처 딸기 빙수'를 맛볼 수 있었죠.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그라넘 다이닝 라운지는 올해 딸기 크림 브륄레, 딸기 피낭시에 등의 다양한 딸기 디저트와 차 또는 커피가 포함된 '애프터눈 티 세트 스트로베리 에디션'을 운영했습니다. 또 '베리 베리 베리 디저트 뷔페'에서는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브랜드 하겐다즈와 손을 잡고 모든 이용객에게 하겐다즈 마카롱 딸기 아이스크림을 활용한 파르페를 메인 디저트로 제공했습니다.
롯데호텔 서울 페닌슐라 라운지&바에서는 딸기 뷔페나 3단 트레이 세트 중 선택할 수 있는 '2024 머스트 비 스트로베리 스윗 드림스' 프로모션을 진행했고요. 서울드래곤시티 노보텔 스위트 앰배서더 용산의 레스토랑 더 26에서는 딸기를 12층 높이로 쌓아 올린 '천국의 계단'을 비롯해 마카롱, 케이크, 타르트 등 딸기 디저트가 가득한 '딸기 스튜디오'를 선보였습니다.
딸기에 이어 배턴을 넘겨받은 과일은 망고입니다. 여름을 맞아 그랫드 하얏트 제주는 애플망고를 듬뿍 올린 애플망고빙수를 출시했고요.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은 그릇까지 먹을 수 있는 애플망고빙수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습니다. 코코넛 모양의 초콜릿 볼에 신선한 생망고, 쫄깃쫄깃한 망고 타피오카, 달콤하고 고소한 코코넛 아이스크림이 어우러졌죠.
호텔 망고빙수 유행을 만든 주인공(?), 신라호텔은 올해 망고빙수뿐 아니라 스파클링 와인, 위스키 등 주류를 곁들인 이색적인 페어링 세트를 판매했습니다.
극심한 무더위를 예상했던 걸까요. 망고빙수만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아닙니다. 트렌디한 빙수를 출시해온 인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는 밤양갱 팥빙수, 토마토빙수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은 쌉싸름한 향과 맛이 중독적인 마차빙수를 출시했죠.
여기에 가을을 맞아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타임스퀘어 호텔의 모모바는 다음 달부터 애프터눈 티 세트 '어텀스 코지 눅 애프터눈 티 세트'를 판매합니다. 단호박 치즈 케이크부터 흑임자 파운드 케이크, 몽블랑 타르트, 스콘, 바삭한 인절미 모나카, 고구마 파이 등 가을의 정취를 그대로 담아낸 디저트를 맛볼 수 있죠.
유명 캐릭터와의 협업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서울드래곤시티는 산리오캐릭터즈와 손잡고 캐릭터 디저트 '시나모롤 애프터눈 티 세트&케이크'를 출시했는데요. 이걸 어떻게 먹나 싶을 정도로 깜찍한 시나모롤 미니무스 등 총 16종의 디저트가 3단 트레이에 준비됩니다.
제철 과일만 잡은 게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셰프들과 손도 잡았는데요. 하이엔드 디저트에 대한 젊은 소비자 관심과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특별한 경험까지 선사할 수 있는 상품이 속속 출시되고 있는 겁니다.
롯데호텔 서울은 일본 유명 파티시에 요로이즈카 토시히코와 함께 팝업스토어를 진행했습니다. 요로이즈카 파티시에는 일본과 유럽에서 35년 이상의 경력을 쌓으며 파리 제빵 박람회 우승 이력과 벨기에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파티시에로 이름을 알렸는데요. 국내에서도 '도쿄 긴자 맛집' 파티시에로 입소문이 나 있습니다. 롯데호텔 서울 델리카한스, 롯데백화점 본점 지하 1층 식품관에서 제철 과일로 만든 달콤한 케이크와 파르페 등을 비롯해 10여 개 메뉴를 판매했습니다.
요로이즈카 파티시에는 2022년부터 롯데호텔 서울과 함께 매년 팝업스토어를 열었습니다. 첫해부터 문전성시를 이룬 데다가 지난해에도 전년 대비 매출이 15% 이상 증가한 바 있죠.
파라다이스시티는 싱가포츠 래플스 호텔의 제과장을 역임한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출신 프랑스 파티시에 가엘 에트리야르와 손잡고 정통 프렌치 스타일의 디저트를 출시했습니다. 딸기 가나슈 크림을 듬뿍 올린 '스트로베리 쁘띠 갸토', 바삭한 초코 크런치에 산딸기 즐레와 얼그레이 크림이 조화를 이루는 '라즈베리 얼그레이 초콜릿 쁘띠 갸토', 말차 가나슈의 달콤함과 파인애플 콤포트의 상큼함이 어우러지는 '파인애플 말차 시소 타르트' 등 다양한 종류의 디저트는 애프터눈 티 세트로도 만나볼 수 있죠.
조선호텔의 최상급 호텔 조선 팰리스 서울 강남의 조선델리 더 부티크는 프랑스 최고의 장인(MOF)인 아르노 라허 셰프와의 마스터 클래스 기술 제휴를 통해 탄생한 케이크 5종을 23일부터 선보였습니다. 파리의 붉은 일출을 초콜릿으로 표현한 '파리 선라이즈' 케이크부터 알프스 정상의 하얀 만년설을 표현한 쁘티 케이크 '몽블랑'까지, 화려한 비주얼과 달콤한 맛이 관심을 끌죠.
라허 셰프는 프랑스가 각 분야 최고 명장에게 부여하는 MOF(메유르 오브리에 드 프랑스·프랑스 최고 명장)로 선정됐고 2013년에는 프랑스에서 가장 뛰어난 최고의 쇼콜라티에 15인에 선정된 인물인데요. 파리에 4개, 도쿄에 1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파르나스호텔이 운영하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는 다음 달부터 로비 라운지 & 바에서 영국 왕실의 레시피를 담은 '엘리자베스 로열 하이티'를 판매합니다. 애프터눈 티 세트의 본고장인 영국 인터컨티넨탈 런던 파크 레인의 수석 파티시에와 협업을 진행하는데요. 엘리자베스 1세가 즐겨 먹었던 디저트,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 오찬에서 제공한 샌드위치 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죠. 16세기 엘리자베스 여왕이 가장 좋아했던 사블레 비스킷을 곁들인 딸기 루바브 크라운부터 우리 쌀을 활용한 영국식 쌀 푸딩, 키위 파블로바, 영국 중절모 모양의 헤이즐넛 무스 케이크 등 다양한 디저트를 맛볼 수 있습니다.
과거 젊은 세대의 소비 습관은 욜로(YOLO·인생은 한 번뿐)로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의 행복을 추구하는 만큼 마음껏, 원하는 대로 소비하는 게 특징이었죠.
그러나 전 세계가 고환율, 고금리, 고물가에 직면하면서 소비 트렌드도 자연스럽게 재편됐습니다. 이에 욜로족과 상반되는 요노(YONO·필요한 것은 하나뿐)족이 등장했는데요. 불필요한 소비는 줄이고, 꼭 필요한 것만 사는 소비 방식을 추구하는 이들을 말합니다.
이 움직임은 보다 신중한 사치를 즐기는 '도파민 피커'의 등장으로도 이어졌습니다. 흔히 재밌고 즐거운 상황에서 '도파민'이 분출된다고 하죠.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도파민을 추구하는 Z세대를 이르는 신조어입니다.
최근 Z세대는 도파민을 잠시 끊는 '도파민 디톡스' 시간을 추구하면서도, 도파민을 즐기는 상황에서는 더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음식이나 제품, 콘텐츠의 질과 균형을 고려하는 소비 패턴을 보입니다. 대표적인 도파민 부스터인 디저트가 점차 고급화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인데요.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라, 색다르고 특별한, 특별한 경험까지 선사할 수 있는 하이엔드 디저트를 선호하게 된다는 거죠.
다가올 가을, 겨울을 맞아 호텔에서 선보일 디저트가 궁금해지는데요. 어떤 재료가 활용될지, 또 어떤 스타 셰프와 손을 잡을지도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