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콜마ㆍ실리콘투 등 제조ㆍ유통사 역할 '톡톡'…현지 수출 '쑥'
발길ㆍ눈길 닿는 곳마다 유명 유적지와 예술작품, 명품이 일상인 이탈리아 로마. 그 중에서도 영화 '로마의 휴일' 주요 배경지인 스페인계단과 트레비분수 사이에 위치한 라 리나센테(la Rinascente) 백화점은 크지 않은 규모에도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쇼핑 '핫플(핫플레이스)'이다. 9월 초 늦은 여름 휴가 차 방문한 이탈리아 로마의 햇빛은 한국만큼 뜨거웠다. 여행 중 잠시 더위를 식히려 백화점 건물로 들어갔다가 의외의 '한국'을 만났다.
◇ 프라다ㆍ페라가모 지나니 'K-뷰티' 코너 떡하니…"니가 왜 여기에?"
0층(한국의 1층) 입구부터 고가의 명품 브랜드 매장이 즐비했다. 한국이라면 장시간 대기와 오픈런 없이는 구경조차 쉽지 않을 것 같은 다양한 브랜드들이 오픈 매장으로 손님을 기다리고 있어 누구나 가볍게 제품을 구경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명품 쇼핑을 하기 위해 방문한 것은 아니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한층을 더 올라가자 유명 뷰티 브랜드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프라다, 페라가모, 까르띠에, 돌체앤가바나 등 국내외 백화점에서 의례적으로 볼 법한 명품 브랜드 사이를 지나다 뜬금없는 글자를 보고 나도 모르게 멈춰섰다. 한국인이라면 모르고 지나칠 수 없는 'K-BEUATY(뷰티)'였다. 나도 모르게 내 발이 그 곳을 향해 갔다.
비치된 화장품들을 살펴봤다. 이탈리아 말은 '차오(Ciao, 안녕하세요)'와 '그라치에(Grazie, 감사합니다)'밖에 모르지만 이곳에서만은 거침없이 읽어낼 수 있었다. 인삼아이크림, 산뜻청매실클렌저, 꽃담필링젤, 맑은쌀 선크림…. 브랜드와 상품명에 한글이 적혀 있었다. 당장 한국 매장에서 파는 제품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얼굴에 붙이는 팩 제품들도 #촉촉수분 #윤기보습 #영양탄력을 통해 저마다의 특성을 알렸다.
◇조선미녀ㆍ미즈온…K 브랜드가 끌고 제조(ODM)ㆍ유통사가 밀다
눈에 띄는 점은 이 곳 코너에 입점된 상품들이 국내 유명 백화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가의 브랜드가 아닌 중소 인디 브랜드들이라는 점이다. 조선미녀(Beauty of Joseon), 미즈온(MIZON), 아로마티카(AROMATICA), 후르디아(FRUDIA), 비원츠(be wants), 에수이(esui) 등 다양한 브랜드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타국 한복판에서 눈으로 보고서야 그 존재를 알게 됐지만 해외에서는 일찌감치 유명세를 탄 제품도 있다. 조선미녀 맑은쌀 선크림의 경우 미국 아마존 '1위'를 시작으로 지난해 신세계면세점 입점, 롯데홈쇼핑 판매 등 국내에 역수출된 대표 브랜드다. 미즈온 아이겔 패치 역시 아마존 아이마스크 부문 누적매출액 1위를 달성했다. 아로마티카도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 26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제품 가격도 마냥 저렴하지는 않았다. 얼굴에 바르는 수딩크림(수분크림)이 대략 20(3만 원)~35유로(5만 원) 안팎에 판매 중이었다. 현장에서 직접 사용해 수 있도록 테스트 제품도 비치돼 있어 품질에 대한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제품 뒷면에는 한글 대신 현지어로 된 상품설명 패치가 붙어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made in KOREA' 표기는 잊지 않았다.
K 뷰티, 그것도 중소 브랜드가 어떻게 이 머나먼 이탈리아까지 들어올 수 있었을까. 이 과정에서 중간 제조사와 유통사들이 제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높다. 제조기반 등이 부족한 소형 브랜드를 대신해 한국콜마(조선미녀 생산) 등 제조사들이 개발생산(ODM) 방식으로 제품을 만들면서 다양한 브랜드가 등장했다. 또 올리브영과 같은 헬스앤뷰티(H&B) 매장이 방한 외국인들의 필수 관광 코스가 됐고 플랫폼 기반 역직구가 확대된 점도 긍정적 요인이다. 실리콘투가 운영 중인 '스타일코리안닷컴'에서는 국내 인디 뷰티 브랜드 상품들이 25개 언어로 번역돼 전세계 100여개 국에 유통된다.
◇'23조' 이탈리아 화장품시장…K 기초화장품 수출 성장세 25% '쑥'
이탈리아는 독일, 프랑스, 영국과 함께 유럽 내 화장품시장 선두권 국가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코트라)가 4월 발표한 '이탈리아 화장품 시장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이탈리아 화장품 산업 규모는 지난해 154억 유로(22조7000억원, 매출액 기준)로 1년 새 13.8% 성장한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연간 성장률 역시 10%에 육박할 것으로 예측됐다.
특히 이탈리아의 경우 기초ㆍ기능성 화장품에 대한 수요가 높아 피부강국으로 꼽히는 K 뷰티가 향후 더욱 힘을 받을 여지가 높다. 이탈리아의 기초화장품 수입액 규모는 11억7314만 달러로 전년 대비 25.2% 증가했다. 현지 기초화장품 수입시장은 주변 유럽국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고 한국은 13위에 그치고 있지만 그 성장률은 25%로 발전 가능성이 높다. 코트라 역시 '2024 이탈리아 진출전략'에서 11개 유망 수출품 중 하나로 화장품을 꼽았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에서는 맑은 피부, 이른바 '물광피부'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한국 화장품처럼 수분감이 넘치는 제품에 대한 현지인들의 호응과 브랜드 경험이 쌓이면서 K 뷰티 열풍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 같다"라며 "이탈리아에서 화장품, 그 중에서도 기초 제품은 브랜드 충성도가 강한 품목임에도 K 브랜드 소비 규모가 확대되고 있는 추세"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