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암에 간암까지 1·2상 속속…글로벌 킴리아·카빅티 추격 잰걸음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이 간암과 혈액암 등을 적응증으로 한 키메라항원수용체-T(CAR-T) 세포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환자 맞춤형 정밀의료 기술이 부상하며 국내 기업이 개발한 첫 CAR-T치료제가 등장할지 주목된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바이오기업들의 CAR-T치료제 개발 노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CAR-T치료제는 환자의 혈액에서 면역T세포를 채취한 후, 해당 세포가 암세포를 민감하게 인식해 공격할 수 있도록 키메릭항원수용체(CAR)를 유전자 조작 기술로 배양한다. 이를 다시 환자 몸에 주입해 암세포를 파괴하는 원리다. 정상 세포 손상을 최소화하고, 한 번 투약으로 치료 효과를 볼 수 있어 말기 환자의 치료 옵션으로 꼽힌다.
앱클론은 이달 초 혈액암 CAR-T치료제 ‘AT101’의 미국 분할특허 등록을 마쳤다. AT101은 혈액암세포 표면에 존재하는 단백질인 ‘CD19’를 표적으로 하는 치료제다. 앱클론은 앞서 2022년 미국에 AT101 관련 특허를 등록한 바 있다. 이번에 취득한 미국 분할특허에는 항체를 포함해 AT101 구성 요소를 총괄하는 내용이 추가됐다.
앱클론은 국내에서 혈액암의 일종인 미만성 거대B세포림프종(DLBCL)을 적응증으로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AT101의 무균시험, 복제가능바이러스 부정시험의 신속검사법 변경을 승인받았다. 이에 임상 중인 환자의 혈액세포로부터 AT101 CAR-T치료제를 제조하고, 품질검사를 거쳐 최종 투여하기까지 걸리는 기간을 3주 미만으로 단축시켰다.
HLB이노베이션은 해외 바이오텍을 품는 전략으로 연구개발에 뛰어들었다. 이달 5일 미국 CAR-T 전문 기업 베리스모테라퓨틱스(베리스모)를 100% 자회사로 편입시키는 절차에 착수했다. HLB이노베이션의 100% 자회사인 HLBI USA가 베리스모와 삼각 주식교환 및 합병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베리스모는 현재 혈액암 치료제 후보물질 ‘SynKIR-310’의 임상 1상 환자 모집에 돌입했다. 올해 5월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열린 ‘미국 유전자세포치료학회(ASGCT)’에서 베리스모가 발표한 전임상 결과에 따르면 SynKIR-310을 투여한 마우스에서 대조군 대비 종양 세포 성장이 현저히 억제되는 효과가 확인됐다.
유틸렉스는 간암을 적응증으로 ‘EU307’ 임상 1상을 준비하고 있다. EU307은 정상 간세포에 영향 없이 간세포암(고형암)에 특이적으로 과발현되는 단백질 ‘GPC3’을 타깃으로 하는 CAR-T치료제다. 현재 국내에서 1상을 진행 중이며, 올해 7월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에서 주관하는 ‘2024년 바이오챌린저’에 선정돼 신속한 제품화를 집중적으로 지원받고 있다.
최근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2024 유럽종양학회(ESMO)’에서 EU307 임상시험을 총괄하는 김도영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가 1상 디자인 초록을 공개했다. 임상 1상의 1차 목표는 용량 제한 독성 및 이상사례 평가를 통해 안정성을 평가하고, 최대 허용 용량과 임상 2상 권장 용량을 결정하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CAR-T치료제 투약 비용은 약 6억~7억 원에 달하지만 아직가지 국내 기업이 개발한 제품은 없다. 현재 식약처 승인을 얻은 CAR-T치료제는 한국노바티스의 백혈병 및 림프종 치료제 킴리아(성분명 티라젠렉류셀)와 한국얀센의 다발골수종 치료제 카빅티(성분명 실타캅타젠오토류셀) 등 2개다. 두 의약품 중 건강보험 급여목록에 등재돼 실질적으로 환자들이 치료에 사용할 수 있는 선택지는 킴리아가 유일하다.
글로벌 CAR-T치료제 시장은 급성장할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투워즈헬스케어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CAR-T 세포치료제 시장 규모는 2022년 38억3000만 달러에서 올해 103억9000만 달러로 성장하고, 연평균 성장률 29.8%로 2032년 885억3000만 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예측됐다. 이런 가운데 국내 기업들도 시장 진출을 위해 후발 주자로 CAR-T치료제 연구개발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국내 세포치료제 연구·개발분야 한 전문가는 “CAR-T 신약 분야에서는 글로벌 빅파마가 크게 앞서고 있지만, 그 범위가 아직은 혈액암에 국한돼 있다”라며 “향후 고형암 적응증, 타겟 항원, 작용 기전 등 여러모로 발전을 거듭할 여지가 크다”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