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제부 부장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시를 준비하는 기업의 재무 및 IR 조직은 공시 마감을 앞두고 밤잠을 줄여가며 검토에 검토를 반복합니다. 작은 숫자와 문구, 표현 방식까지 고치고 또 고치는 셈이지요.
공시는 글자 하나하나가 정말 중요합니다. 잘못된 정보를 올렸을 경우 잘못하면 과태료를 포함해 갖가지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지요. 무엇보다 이로 인한 신뢰 추락이 더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가 잘 갖춰져 있습니다. 미국 역시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관련법에 따라 기업의 공시를 관리합니다. 잘못된 공시를 지적하고 단속하며 규제하는 역할도 SEC 임무입니다.
앞서 SEC는 9일(현지시간) 내부고발자 보호 규정을 위반한 7개 기업에 총 300만 달러(약 40억30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이들이 실제로 내부고발을 방해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공시에 있는 고용 및 해고 계약서에 내부고발자의 신고를 방해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 ‘문구’가 포함된 것이 문제였습니다.
SEC는 이처럼 숫자의 오류를 넘어 공시 문장과 단어까지 꼼꼼하게 따져서 규제합니다. 그게 SEC 역할이지요.
미국에서 사업을 이어가는 국내 기업도 종종 잘못된 공시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몇 해 전부터 지적된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국내 기업의 ‘국적(nationality)’인데요. 예컨대 SEC에 나온 현대자동차의 기업정보를 보면 국적이 북한을 의미하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Korea, Democratic People’s Republic·D.P.R.K)’으로 표기돼 있습니다.
단순한 표기 오류가 아닙니다. 현대차가 그동안 주기적으로 공시한 내용마다 대한민국(R.O.K) 대신 북한을 의미하는 D.P.R.K가 가득합니다. 너무 많아서 손에 꼽지 못할 정도입니다. 기업이 아니라 SEC가 국적을 잘못 분류했다고 해도 이를 수정하지 않는 것은 문제입니다.
현대차 이외에 미국 현지에서 사업을 이어가는 국내 기업 다수도 국적을 D.P.R.K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공시만 따져보면 이들 모두 북한 회사인 셈이지요.
“그렇게 써도 세계가 다 아는 한국 기업 아니냐”고 되물을 수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우리 기업 맞습니다. 그래서 더 문제입니다. 누가 봐도 뻔히 아는 한국 기업인데, 가장 중요한 공시에서 국적 하나 제대로 표기하지 못했다는 게 문제이지요.
국제적으로 D.P.R.K(북한)와 R.O.K(한국)의 차이를 뚜렷하게 인식하는 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를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2024 파리올림픽 개회식에서 우리 선수단을 북한(D.P.R.K)으로 잘못 소개해 논란이 있었는데요. 당시 우리 정부도 주최 측에 공식 항의에 나서기도 했지요. 그만큼 이는 중요한 사안입니다.
기업 공시는 단순하게 홈페이지에 나오는 기업 소개와 차원이 다릅니다. 주주를 포함한 모든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기업의 공식 입장입니다.
잘못된 공시를 지적할 때마다 민감하게 반응할 때가 아닙니다. 한시라도 빨리 오류를 잡아내는 게 더 중요합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업들의 신뢰가 한 계단 더 추락할 위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