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업계가 업황 반등 조짐에 따라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돌파구 마련에 한창이다. 다만 미래전략수립 과정에서 특허ㆍ경영권 분쟁으로 빚고 있는 마찰이 적잖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석화업계는 경기침체로 석유제품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고유가 장기화로 실적 부진이 심화했다. 특히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이 급등하면서 원가 부담이 가중됐다. 애초 중국 양회(兩會) 이후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으로 수요가 회복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국내 석화업체들은 올해 수요 회복에 기대를 걸고 있다. 중국은 지난달 24일 중앙은행의 1조 위안(약 189조 원) 규모 시중 유동성 공급과 정책금리 인하 등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발표했다. 중국은 나프타 등 주요 원료 소비국으로 이번 부양책을 통해 생산 능력을 확대할 전망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HS효성첨단소재(옛 효성첨단소재)와 코오롱인더스트리는 하이브리드 타이어코드(HTC) 특허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최근 전기차 시장이 유망 사업으로 떠오르면서 어느 한 곳도 물러서 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미국 법원은 최근 코오롱인더스트리가 HS효성첨단소재를 상대로 제기한 HTC 관련 특허 침해 소송을 기각했다. 7월에 이어 두 번째 기각 결정이다.
차세대 타이어코드라 불리는 HTC는 슈퍼섬유로 불리는 아라미드와 나일론을 혼합한 제품이다. 높은 강도와 내구성을 지녀 초고성능 타이어에 적용 가능하며, 배터리 무게로 인해 중량이 큰 전기차용 타이어의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양사 간 치열한 법정 공방은 전기차 시장 확대와 무관치 않다. 전기차는 타이어 마모 속도가 일반 타이어 대비 20~25% 빠르다. 일반 타이어 교체 주기가 평균 4~5년이라면, 전기차 타이어는 2~3년에 그친다. 빠른 교체주기 덕분에 실적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
코오롱인더스트리 관계자는 “이번 기각 결정은 소장의 내용 일부분에 대해 다시 정리해서 제출하라는 취지의 결정으로 재판 자체가 끝난 것이 아니다”며 “14일 이내에 법원의 요청 내용을 보완해 재판부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려아연과 영풍 간의 경영권 분쟁은 그야말로 쩐의 전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영풍그룹은 두 창업주가 공동 설립한 영풍기업이 모태다. 1970년 영풍 석포제련소, 1974년 고려아연 온산제련소를 설립한 아연 제련사업을 주요 기반으로 한다. 최씨 일가는 온산제련소, 장씨 일가는 석포제련소를 각각 맡아 경영하고 있다. 고려아연의 경우 지분 소유는 양측에서 비슷한 규모로 갖고 있으나, 경영은 최씨 일가가 책임지는 구조로 이어져 왔다.
2022년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취임 이후 최씨 일가와 장씨 일가 간 고려아연 지분 매입 경쟁이 벌어지면서 경영권 갈등을 빚고 있다.
영풍·MBK 연합이 지난달 13일부터 시작한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는 한 달여 만인 14일 종료된다. 영풍·MBK 측의 공개매수 가격은 주당 83만 원으로, 고려아연이 제시한 가격(89만 원)보다 6만 원 낮다.
영풍·MBK 측이 가격 면에서 불리한 만큼 최대 목표 수량인 발행주식총수의 14.6%를 채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투자자마다 배당소득세와 양도소득세 유불리가 다르고, 가처분 소송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아 영풍·MBK가 적어도 한 자릿수의 지분은 확보할 것으로 점쳐진다.
또한 양측 모두 초과 청약 시 물량을 비율대로 나눠 매수하는 안분비례를 적용하는데, 가격이 높은 고려아연 쪽으로 청약이 몰릴 것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영풍·MBK의 공개매수에 응할 가능성도 있다.
고려아연은 11일 공개매수 가격을 인상하면서 매입 물량도 사실상 유통 주식의 전부인 20%로 확대하며 주주들의 불안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는 23일까지 진행된다. 고려아연은 자사주 공개매수를 통해 전체 발행 주식의 17.5%를 확보할 예정이다. 우군으로 나선 베인캐피탈도 지분 2.5%를 공개매수한다.
업계에선 누가 이기든 승자에 저주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석화업계 관계자는 “기술 경쟁과 시장 방어를 위해 다양한 전략을 펼쳐야 하는 상황에서 체력을 소진하고 있다”며 “우리 기업 간 소송전은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고 경영 리스크와 기업 이미지 손상도 동반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