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를 영어로 번역해 2016년 한강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 인터내셔널을 받은 데보라 스미스는 한강의 문장이 지니는 특색으로 '시적 문체'를 꼽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2016년 '대산문화'에 밝힌 번역 후기에서 "한강의 작품을 접할 때면 나는 장르를 불문하고 그 작품 특유의 분위기와 어조와 결이 하나의 정제된 이미지로 다가오는 경험을 종종 하는데, 이건 작가의 소설가이자 시인으로서의 이중생활 덕분인지도 모르겠다"라고 전했다.
이어 "번역가로서 나는 당연히 작가의 의도를 존중하고자 최대한 노력하는데, 'The Vegetarian'의 경우는 영어와 한국어의 거리 때문에도 원문의 효과를 영어 번역문에 재현하고자 적확한 문장 구조와 어휘를 찾기 위해 공을 들여야 했다"는 소회를 전했다.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부커상을 받았을 때, 일부 평론가들 사이에서 번역과 관련해 오역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원작에 없는 영어 문장이 생기는 등 원작자의 의도를 번역가가 왜곡하고 훼손했다는 취지다. 이로 인해 '좋은 번역이란 무엇인가?'라는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기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학번역원 소속 곽현주 번역출판교류본부장은 13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좋은 번역은 원문에 충실하면서 현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곽 본부장은 "번역가들은 작가가 찍은 쉼표 하나에서도 그걸 왜 거기에 찍었을까 고민한다. 단어 하나하나를 어떻게 번역할지 굉장히 고심한다. 그런 점에서 번역가 선생님들의 공로가 참 크다"라고 전했다.
그의 말처럼 번역은 단순한 언어 변환을 넘어 한국 문학의 섬세한 정서와 문학적 깊이를 전 세계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같은 중요성 때문에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은 작가와 번역가에게 공동으로 상을 수여한다. 비영어권 작품들이 어떻게 번역되느냐에 따라 작품의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허희 문학평론가는 "과거에는 지금보다 번역 인재풀이 좁아서 한국 문학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릴 기회가 많지 않았다"라며 "한국 문학이 세계인의 찬사를 받게 된 데에는 번역원의 노력이 중요했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번역원에서 신진 번역가들을 양성하고, 매년 서울국제작가축제 등을 개최해 해외 출판 관계자들과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성과가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한강의 작품들은 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28개 언어로 번역됐으며 전 세계에서 총 76종의 책으로 출간됐다. 여기에는 번역원 아카데미 출신 번역가들의 숨은 공로가 있다.
특히 번역원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윤선미 교수는 한강의 대표작인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흰' 등을 스페인어로 번역했다. 아카데미 수료생인 이태연 번역가는 '바람이 분다, 가라'를 불어로 번역했고, 마토 맨더슬롯(Mattho Mandersloot) 번역가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영어와 네덜란드어로 번역했다.
이 같은 번역가들의 존재가 K문학의 지속 가능한 흐름을 유지하고, 그 위상을 더욱 견고하게 할 소중한 인적자원인 셈이다.
곽 본부장은 "한강의 문체는 강렬하고 시적이라서 번역에 상당한 내공이 필요하다"라며 "그 문체를 잘 번역해서 현지에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 책을 해외에 보내려면 날개가 있어야 하는데, 그 날개 역할을 번역가 선생님들이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번역원은 아카데미에서 정식 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고도화시킨 모델인 번역대학원대학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윤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학진흥법' 개정을 통한 번역대학원대학교 설립 법안을 이달 중에 발의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전문 번역 인력 양성과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체계적인 지원이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전수용 번역원장은 "한국 문학의 국제상 수상은 일차적으로 작가의 우수한 역량도 있지만, 그 다음으로 양질의 번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라며 "번역대학원대학교 설립을 통해 더 많은 전문 번역인력이 양성되고, 더 많은 우수한 번역 인재들이 국제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