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택경기 침체와 수익성 저하로 건설업체들의 선별 수주가 이어지며 서울 정비사업 조합이 시공사 찾기에 애를 먹고 있다. 서울 강남 등 핵심 입지의 사업지들도 시공사를 찾지 못해 유찰되는 실정이다.
13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신반포2차 재건축 조합은 이달 4일 시공사 선정을 위한 현장설명회를 개최했다. 지난달 진행된 1차 입찰에 이어 현대건설만 단독으로 참석하며 시공사 선정은 수의계약으로 진행하게 됐다.
반포 대장주로 꼽히는 래미안원베일리 맞은편에 있는 신반포2차는 한강 조망권인 데다 고속버스터미널과 올림픽대로, 반포대로를 접해 입지 여건이 우수한 곳으로 평가받는다. 서울시의 한강 변 층수 규제 완화 대상으로 최고 49층, 15개 동 총 2057가구로 재건축될 예정이다. 총 공사비용도 1조2000억 원이 넘는 대형 공사임에도 건설업체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시정비법')에 따라 1개 업체가 입찰에 참여시 1차 입찰은 유찰되고 2차를 준비하게 된다. 계속해서 경쟁입찰이 이뤄지지 않으면 2회 유찰 후 수의계약이 가능하다.
용산구 산호아파트 재건축 조합은 네 번째 시공사 선정을 진행하고 있다. 올 4월 첫 시공사 선정 입찰에 나섰지만 무응찰로 유찰됐고, 6월 2차 선정 때도 마찬가지였다. 9월 세 번째 시공사 선정에선 롯데건설이 단독으로 참여했지만 경쟁 입찰 미성립으로 다시 고배를 마쳤다. 이번 시공사 선정 입찰 참여는 다음 달 18일까지다.
현재 최고 12층, 6개 동 554가구 규모인 단지를 지하 3층~지상 35층, 7개 동 647가구(임대 73가구)로 재건축한다. 조합이 제시한 공사비는 3.3㎡당 830만 원이다.
올해 시공사 선정에 나선 서울 재개발·재건축 사업장(가로주택정비 등 소규모 사업 제외)은 총 21곳이다. 이 가운데 경쟁입찰 구도가 형성된 단지는 2곳 뿐이었다. 3월 영등포구 여의도 한양에선 현대건설과 포스코이앤씨가 맞붙은 결과 현대건설이 승기를 잡았다. 지난달 강남구 도곡개포한신은 DL이앤씨와 두산건설의 접전 끝에 DL이앤씨가 조합원의 최종 선택을 받았다.
19개 사업장은 수의계약을 통해 시공사를 선정했다. 6월 송파구 가락삼익맨숀 재건축 조합은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단독 입찰한 현대건설과 도급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 앞서 두 차례의 입찰에서 거듭된 유찰을 겪어서다.
같은 달 강남구 신반포27차 재건축 조합은 수의계약 대상자인 SK에코플랜트를 시공자로 선정했다. 총 공사비는 1039억 원이다. 다수의 가구가 한강 조망권이라 향후 가치 상승이 예고되는 단지임에도 일반분양 물량이 적은 탓에 입찰 참여를 주저한 건설사가 많았던 것으로 분석된다.
시공사 선정을 위해 당초 제시한 입찰 요건을 수정한 조합도 적지 않다. 송파구 잠실우성4차 재건축 조합은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두 차례의 시공사 선정이 연이어 무산되자 3.3㎡당 공사비를 760만 원에서 810만 원으로 50만 원 높였다. 이후 7월이 돼서야 DL이앤씨를 시공사로 최종 선정할 수 있었다.
공사비 약 6920억 원 규모의 강서구 방화3재정비촉진구역 재건축 조합은 기존 공고를 수정해 6월부터 공동도급(컨소시엄)을 허용했다. 컨소시엄은 하자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 않고 건설사별 특화 설계 적용도 어렵다 보니 단독 입찰을 선호하는 조합이 많다. 유찰이 이어지면 결국 사업 지연과 공사비 상승으로 연결되기에 입찰 문턱을 낮춘 것으로 풀이된다.
조합은 통상 여러 건설업체가 입찰에 참여해 유리한 조건을 선택할 수 있는 경쟁입찰을 선호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시공사를 찾지 못하는 동안 계속해서 오르는 공사비와 분양가를 의식, 수의계약으로라도 도급계약을 최대한 빨리 맺으려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건설업체들의 ‘옥석 가리기’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조합이 낮은 공사비를 제시하면 시공사의 참여가 없어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공사비를 올리는 곳도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이지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올 하반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며 기업의 자금조달 여건에 어려움이 지속함에 따라 수주 감소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