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ㆍ中ㆍ日, 막대한 지원…국가 안보와 직결
역대 산업부 장관들은 반도체 강국 지위를 지키기 위해 과감한 혁신과 정부의 전방위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14일 한국경제인협회는 역대 산업부 장관을 초청해 ‘반도체 패권 탈환을 위한 한국의 과제’ 특별 대담을 개최했다.
김창범 한경협 상근부회장은 “미국, 중국 및 일본은 막대한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자국 기업과 현지 투자 기업에 제공해 기술 혁신 및 선점을 위해 앞다투고 있다”며 “이대로 가다가는 국내 반도체 생산능력이 중국과 대만에 갈수록 뒤처질 수밖에 없고, 인공지능(AI) 등 첨단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 싸움에서도 패배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석좌교수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 미래와 전략’ 주제 발표를 진행했다. 그는 현재의 2D 스케일링(Scaling)에 기반한 D램(DRAM) 성능 향상 추세가 향후 5년 내 한계에 봉착할 것으로 전망했다.
황 석좌교수는 “수직구조 낸드플래시와 유사한 적층형 3D DRAM 구조로의 전환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향후 극자외선 노광장비(EUV) 및 관련 기술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감소해 한국이 후발국가 대비 보유한 DRAM 분야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중국의 급격한 추격을 경계했다. 황 석좌교수는 “국내 시스템 반도체 분야의 더딘 발전과 메모리 분야 경쟁력 저하가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장래에 불안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며 “국가적 지원에 힘입은 중국 반도체 기업의 메모리 분야 진출은 향후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발전에 큰 도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국가적인 지원과 학계 및 산업계의 노력이 경주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종호 전 과학기술통신부 장관, 이창양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성윤모 전 산업부 장관, 윤상직 전 산업부 장관, 이윤호 전 지식경제부 장관 등 역대 장관들은 좌담회를 통해 우리나라가 일본 도시바의 몰락과 미국 인텔의 위상 하락 사례를 되풀이하지 않고,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직 장관들은 공통으로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기술 한계와 후발국의 추격 및 전력 수급 등 산적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시스템 반도체 분야의 더딘 발전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메모리 분야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지원을 단순히 개별 기업에 대한 혜택으로 봐서는 안 된다”며 “미국, 중국, 일본이 막대한 보조금 지원을 결정한 것은 반도체가 단순한 산업을 넘어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현대 군사 기술의 90% 이상이 반도체 기술에 의존하는 등 반도체 산업은 국가 안보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했다.
또한, 심각한 전력 수급 문제도 지적했다. 윤 전 산업부 장관은 “반도체 산업발전을 위해서는 기술인력, 자금력, 전력, 데이터 4가지 필수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며 “2030년경에는 현재 발전용량의 50% 이상 추가로 필요할 것”이라며 구체적 수치를 제시했다.
아울러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만 최소 10기가와트(GW) 전력이 필요하고, 2029년까지 신규 데이터센터 전력수요만 49GW에 달할 것이라면서 “특별법 제정을 통해 지체되고 있는 송전망 건설을 조속히 완공하고, 신규 원전건설과 차세대 소형모듈원전(SMR) 조기 상용화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성 전 산업부 장관은 “정부는 반도체 산업에 대해 타 국가보다 빠른 속도로 양질의 다양한 지원을 전폭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며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육성은 물론 일본 수출규제 대응을 통해 마련된 반도체 소재ㆍ부품ㆍ장비 산업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해 흔들리지 않는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했다.
이 전 산업부 장관은 “PC 시대와 모바일 시대를 거쳐 AI 시대로 진입하면서 반도체 산업의 제품 수요와 기술 변화, 그리고 기업의 경쟁력 판도가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경영 판단 및 기민한 대응과 함께 이를 뒷받침하는 정부의 효과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특별초청 자격으로 대담에 나선 이 전 과기정통부 장관은 AI 시대의 기술 혁신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산학연 협력을 통해 AI의 엄청난 전력 소비를 줄일 수 있는 저전력 반도체 기술 개발이 신속하고 실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우리나라가 가진 특장점을 활용해야 세계를 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