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성 적금' 등 현지 맞춤형 상품 준비 중
"빠른 시일 내 연간 1조 루피아 이익 달성
향후 중산층 고객 확대 대비한 상품 개발"
하지만 수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 금융사들은 단 한번도 멈추지 않았다. 꾸준한 인수합병(M&A)으로 영토를 확장했고 점포도 늘렸다. 신사업 기회도 놓치지 않았다. 글로벌 경기 부진과 현지 기업들의 성장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시적인 부침을 겪고 있으나 그 동안 뿌렸던 씨앗은 언제든 수확할 수 있는 열매로 자라났다.
최근 세계로 비상하는 ‘K산업’을 통해 또 한번 도약의 기회를 맞았다. 금융당국도 금융사의 해외 진출 지원을 위해 각종 규제를 없애며 힘을 실어주고 있다. ‘퀀텀 점프’할 준비가 돼 있는 한국 금융사들의 글로벌 전략을 짚어본다.
하나은행은 국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 중 가장 먼저 인도네시아에 발을 들였다. 1971년 설립된 ‘빈땅 마눙갈은행’을 2007년 인수해 현지 개인금융 기반을 다졌다. 2014년에는 현지 KEB외환은행 인수를 통해 기업금융과 무역금융 강점도 확보했다. 오랜 영업으로 얻은 ‘거래 안정성’은 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법인(PT Bank KEB Hana Indonesia)의 경쟁력으로 꼽힌다.
현재 하나은행의 인도네시아 내 자산 규모는 3조9780억 원으로 전체 105개 은행 중 35위다. 2021년 6월 디지털뱅크인 ‘라인뱅크’ 출시를 기점으로 신규 서비스를 개발하는 등 현지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 남부 자카르타 하나은행 본사에서 만난 문성혁 인도네시아 법인 부행장은 “그간 만든 영업 기반을 바탕으로 은행을 발전시키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며 “이익을 내는 ‘내실 있는 은행’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은행이 집중하는 영업 전략 중 하나는 ‘디지털’이다. 문 부행장은 “영업 네트워크 채널이 제한된 외국계 은행이 인도네시아에서 리테일금융을 하기 위해 디지털은 필수”라며 “상품·서비스부터 업무 프로세스까지 은행 경영 전반의 디지털 전환이 목표”라고 피력했다.
영업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수월하지는 않다. 인니에서는 4대 현지 대형은행(만디리·BRI·BCA·BNI)이 전체 은행 산업 총자산의 54%를 차지한다. 자산 규모 30위권 외국계 은행이 경쟁력을 갖기 어려운 환경이다. 또, 신용 인프라 기반이 약한 현지 특성상 기업과 개인의 신용 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과 대출 심사, 부실 관리가 쉽지 않다. 인도네시아 경제성장률이 5%대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고 개인의 저축 여력도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은행 리테일 영업의 주요 고객이라 할 수 있는 ‘중산층’이 부족한 것도 한계점이다.
여러 걸림돌에도 하나은행의 성과는 눈에 띈다. 라인뱅크를 론칭한 지 3년 만에 약 120만 명의 손님을 확보했다. 영업점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하루에 20~30명 수준임을 고려하면 같은 기간 영업점 채널만으로는 얻기 어려운 고객 규모다. 하나은행의 인도네시아 고객 수는 2021년 말 99만2316명(개인 98만5258명·기업 7058곳)에서 올해 6월 256만5687명(개인 255만6845명·기업 8842곳)으로 약 3년 만에 2.6배 증가했다.
올해 6월 말에는 지난해부터 하나은행이 자체적으로 진행한 IT 리빌드(Rebuild) 사업이 성공적으로 완료됐다. 고객의 니즈와 각종 제휴 사업 등에 즉시 대응할 안정적인 IT 시스템을 마련했다. 현재 140여 명의 현지 인력이 투입돼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현지 맞춤형 상품·서비스 개발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라인뱅크는 내년 중 고객의 ‘목적 자금’ 마련을 위한 적금을 출시할 예정이다. 적금 만기 시 원리금 대신 핸드폰을 제공하는 등의 현지 특화 상품이다. 인니 여행객을 위한 한국 교통카드 탑업(충전) 신상품도 론칭 준비에 한창이다. 가입 고객에게 환율 우대·할인 프로모션을 제공해 한국 여행을 지원할 계획이다.
수익성 확보를 위해 비이자이익 확대에도 힘쓰고 있다. 대표적인 노력 중 하나가 ‘하나 아이드바이저(Hana Aidvisor)’다. 인공지능(AI)을 통한 펀드 추천 및 비대면 가입 서비스로, 지난해 8월 출시됐다. 문 부행장은 “향후 한국의 하나 어드바이저 상품을 추가 도입해 고객의 투자 포트폴리오 관리를 지속해서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지 시장에서, 현지 은행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 인도네시아 하나은행이 생각하는 장기적인 생존 방법이다. 그는 “한국기업 시장만 붙잡아서는 성장할 수가 없다”며 “살아남기 위해 앞으로는 안정적인 고객 기반 확대를 위한 ‘로컬라이제이션’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인도네시아 하나은행의 가장 가까운 목표는 연간 약 1조 루피아(약 870억 원) 규모의 이익을 내는 것이다. 문 부행장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인도네시아 내 중산층이 늘어났을 때 신규 고객을 끌어당길 수 있는 탄탄한 상품군과 서비스를 선제적으로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하나은행은 정권교체, 수도 이전 등 인도네시아 내부 이슈와 관련해서도 기민하게 대응할 계획이다. 그는 “국영기업이 주도하는 대형 에너지 프로젝트에 새로 참여하거나 투자 규모를 늘리는 기업을 대상으로 발 빠르게 금융 지원할 것”이라며 “한국계 기업이 건설·인프라 구축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