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예상치 절반에도 못 미쳐
주가 16% 폭락…26년래 최대 낙폭
엔비디아·AMD 등 동반 하락
“AI 이외 분야서 시장 회복 더뎌”
15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ASML의 3분기 수주액은 26억 유로(약 3조8600억 원)로 LSEG가 집계한 시장 예상치(56억 유로)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집계됐다. 내년 순매출 전망치는 300억~350억 유로로 제시됐는데, 이 역시 시장 예상치(358억 유로)에 부합하지 못했다.
ASML의 실적 발표는 당초 16일 예정돼 있었지만 이날 자체 웹사이트에 일시적으로 3분기 실적보고서가 노출되는 사고가 있었다. 이로 인해 ASML 미국주식예탁증서(ADR)는 16.26% 폭락하면서 1998년 이후 26년 만에 최대 일일 낙폭을 기록했다.
이는 AI 열풍에 힘입은 반도체 수요의 파도가 모든 배를 띄울 것이라는 낙관론에도 경종을 울렸다. 불안감이 번지면서 미국 반도체 관련 종목으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가 5.28% 급락했다. 엔비디아가 4.69%, AMD는 5.22%, 브로드컴이 3.47% 각각 빠졌다.
ASML의 실적 쇼크는 반도체 업황이 어려워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로저 다센 ASML 최고재무책임자(CFO)는 “AI 이외 분야에서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시장 회복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과 PC의 출하량 부진에 따라 메모리 반도체 시황 회복도 주춤하는 추세다.
ASML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공급하는 최첨단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의 주요 수요처인 인텔과 삼성전자가 직면한 어려움도 실적 부진에 영향을 미쳤다. 인텔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를 분사하고 유럽과 아시아에서 진행하던 공장 건설을 일시 중단하는 등 대규모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대중국 매출 부진도 ASML의 부진한 실적 전망 배경이다. 미국 정부 요청에 따라 네덜란드 정부는 첨단 반도체 양산에 필요한 ASML 장비의 중국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중국은 3분기 ASML 전체 매출에서 50%의 비중을 차지했다. ASML은 내년 중국 매출 비중이 전체의 약 20% 수준으로 위축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도체 생산업체 트렌드도 ASML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업계는 최첨단 장비로 회로선폭을 좁히는 기존 방식을 통한 반도체 성능 향상에는 한계가 있다는 인식에 따라 반도체 신호 전송을 빛으로 하는 광반도체나 칩 간 연결속도 향상 등 다른 기술로 눈을 돌리고 있다.
크리스토프 푸케 ASML 최고경영자(CEO)는 “AI 분야에선 강력한 발전 및 상승 가능성이 계속되고 있지만 다른 시장 부문들은 더딘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며 “이러한 추세는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고, 이로 인해 몇몇 고객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