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1. 이상기후에 요동치는 바닷길
지정학적 갈등까지 불확실성 증폭..."친환경 전환·시장 다변화"
지난해 말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파나마운하 주변에 선박들이 늘어섰다. 73년 만에 최악의 가뭄으로 운하 통과 선박 수가 한때 하루 22척까지 줄면서 ‘교통체증’이 악화한 결과였다. 운송 지연은 글로벌 공급망을 흔들었고, 세계 경제에 700억 달러(약 95조 원) 규모의 피해를 입혔다.
20일 해운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기후변화로 세계 무역의 90%를 책임지는 해상운송이 차질을 빚고 있다. 국제사회가 탄소배출 대응 차원에서 꺼내든 선박 탈탄소 규제도 도전과제다. 세계는 ‘다변화’, ‘기술개발’, ‘친환경 전환’에 드라이브를 걸고 시장 주도권 확보에 나섰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도 시동을 걸었지만,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30년간 세계 경제의 동반성장을 이끈 힘은 글로벌 공급망에 있었다. ‘아웃소싱’과 ‘해상운송’이 효율 중심 글로벌 공급망을 떠받쳤다. 전 세계 저렴한 공급업체 접근성이 향상되면서 ‘적시생산시스템(just in time)’도 뿌리내렸다. 3만여 개 부품이 여러 국가와 대륙을 넘나들며 자동차 한 대가 생산됐고, 6대륙 48개국 업체에서 공급받은 부품으로 스마트폰 한 대가 제조됐다.
그러나 ‘비용 최적화 공급망’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2020년 팬데믹이 기폭제가 됐다. 세계 최대 항만들이 줄줄이 봉쇄되면서 화물을 실은 대형 선박 수십 척이 바다를 떠돌았다. 극심한 기상이변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2021년 ‘에버기븐호’가 모래폭풍으로 수에즈운하에 좌초되면서 약 400척 선박의 발이 묶였고, 2023년 최악의 가뭄을 겪은 파나마운하는 역사상 최초로 선박 통행 제한에 들어갔다.
세계해운위원회(WSC)는 기상이변으로 연간 분실되는 컨테이너가 평균 568개에 달한다고 밝혔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주요 항만의 공급망 붕괴로 연간 1조 달러의 경제 손실을 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무역전쟁, 지정학적 갈등까지 몰아치면서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은 증폭됐다. 운송 지연은 비용 상승으로 이어졌고,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운 인플레이션으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았다. 세계 경제성장률도 최악의 둔화를 기록했다. 특히 주요 전략 물자의 극단적 쏠림 현상은 ‘안보’ 불안을 부채질했다.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성에 놀란 세계가 대응에 나서면서 공급망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리쇼어링’(해외 생산기지 본국 복귀), ‘니어쇼어링’(인접국가로 생산기지 이전)을 통해 역내 공급망 구축에 착수했고, ‘글로벌 사우스’(남반구나 북반구 저위도 지역의 신흥국)와의 협력 강화로 시장 다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항만을 자동화하고, 리스크 최소화를 꾀하고 있다. 유럽(EU)과 국제해사기구(IMO) 중심으로 탄소 배출 규제를 강화하자 친환경 선박 및 연료 개발에도 적극 뛰어들었다. 새로운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도 과감한 투자와 지원이 절실하지만, 속도가 더디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아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전문연구원은 “친환경 선박, 연료, 벙커링 기술 확보 등 ‘퍼스트무버’가 되면 수익이 급격히 증대할 수 있다”며 “공격적 투자로 시장을 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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