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회장 2년만에 직접 참석
대외적 쇄신 메시지 내놓지 않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조부인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별세 37주기를 맞아 고인을 추모하며 ‘사업보국’의 정신을 되새겼다. 다만 이 회장은 삼성을 둘러싸고 있는 위기를 쇄신할 메시지를 내놓지는 않았다. 최근 일련의 공개 석상에서 ‘침묵’을 지켜오고 있는 가운데 초격차 경쟁력 회복을 위한 이 회장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19일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37주기 추도식이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인근 선영에서 진행됐다. 예년처럼 삼성을 비롯해 신세계, CJ, 한솔 등 범삼성 계열 그룹들이 시간을 달리해 선영을 찾았다.
삼성에서는 이날 오전 10시 40분경 이재용 회장을 비롯해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김재열 삼성글로벌리서치 사장 등이 선영을 찾아 약 50분간 고인을 추모했다.
올해는 반도체 실적 부진을 두고 우려의 시선이 이어지는 가운데 맞은 이 창업회장의 추도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달랐다.
이 창업회장은 단순히 이윤 추구가 목적이 아닌 경제 활동으로 국가에 이바지하겠다는 사업보국의 정신으로 지금의 삼성을 일궜다. 그는 1938년 대구에서 현재 삼성물산의 모태인 삼성상회를 세운 이후 제일제당, 제일모직, 한국비료, 삼성전자 등 굴지의 기업들을 만들었다.
특히 이 창업회장은 반도체에서 끊임없는 기술 개발을 강조하며 삼성의 주력 사업으로 이끌었다. 그는 1983년 이른바 ‘2·8 도쿄 선언’에서 “반도체 사업이 자신의 마지막 사업이자 삼성의 대들보가 될 사업”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해 삼성전자는 양질의 64K D램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이 한국을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반도체의 성공 신화의 시작이었다.
이재용 회장은 지난달 25일 이건희 선대회장 4주기 추도식에 이어 이날도 별도의 대외적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다. 이 회장이 침묵 속에서 삼성의 강력한 쇄신안 마련에 집중하겠단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최근 실적 부진으로 위기감이 맴도는 반도체 사업에서 기술력 회복 방안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전날인 18일 반도체 성공 신화의 산실인 기흥캠퍼스에서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R&D)단지 ‘NRD-K(New Research&Development-K)’ 설비 반입식을 열고, 반도체 미래 기술 연구의 새 전초기지로 육성할 것을 공언했다.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도 기념사에서 “NRD-K를 통해 차세대 반도체 기술의 근원적 연구부터 제품 양산에 이르는 선순환 체계 확립으로 개발 속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나갈 것”이라며 “재도약의 발판을 다져 새로운 100년의 미래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르면 이달 말로 예상되는 삼성 사장단 및 임원인사, 조직개편에서도 반도체 기술력 강화에 방점이 찍힐 것으로 보인다. DS부문 사업부 수장들이 대거 교체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다음 달 6일에는 반도체 사업 50주년을 맞아 ‘DS인의 일하는 방식’을 공개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앞서 9월 사업 경쟁력 회복을 위해 임직원 구호인 ‘반도체인의 신조’를 새로 만들기로 했다.
조용한 가운데 치러진 이 창업회장의 추도식도 대대적 혁신을 앞둔 폭풍전야의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한편 이 창업회장의 장손인 이재현 CJ 회장과 그의 아들 이선호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 딸 이경후 CJ ENM 브랜드전략실장 등 CJ 일가는 오전 9시께 가장 먼저 선영을 찾아 약 40분간 머물렀다. 이재현 회장은 예년처럼 추도식과 별도로 호암이 생전에 살았던 서울 장충동 고택에서 이날 저녁 고인의 제사를 지낸다.
이날 오후에는 호암의 외손자인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신세계그룹 사장단 등이 선영을 찾았다.
과거 범삼성 계열 그룹 일가는 호암 추도식을 공동으로 열었다. 그러다 형제인 CJ 이맹희 전 회장과 삼성 이건희 선대회장이 상속 분쟁을 벌인 2012년부터는 같은 날 시간을 달리해 별도로 추모행사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