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TV ‘무한도전’ 듀엣가요제 곡들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한때 실시간 음원차트 10위 내에 출품곡 전체가 이름이 올랐다.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다. 방송 후 2주일 지난 현재까지도 명카드라이브(박명수·제시카)의 ‘냉면’과 퓨쳐라이거(유재석·타이거JK·윤미래)의 ‘렛츠 댄스’ 등 대부분 음원차트에서 5위 내에 머물고 있다. 듀엣가요제 앨범 역시 사실상 5만장이 완매된 상태다.
이 같은 기현상의 원인은 명백하다. 대중음악계가 이제 그 자체로는 이벤트성이나 이슈생산력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텍스트형 언론플레이에도 한계가 왔다. 범주가 넓은 방송 프로그램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그것도 음악 프로그램으로는 안 된다. 안 되는 업계를 살리기 위해 업계종속형 프로그램을 이용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되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기대야 한다. 이러면 대중음악계 흐름도 전체가 바뀌게 된다. 퓨쳐라이거의 ‘렛츠 댄스’를 선보인 MBC TV 음악 프로그램 ‘쇼! 음악중심’은 평균시청률의 2배에 육박하는 9.9%를 올렸다. 결국 권력의 구조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음악→음악 프로그램 순으로 재편됐다는 이야기다.
허탈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이렇게 음악 산업이 몰락하다니’ 따위의 한숨으로 끝나면 안 된다. 대중음악계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종속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KBS 2TV ‘1박2일’ 등 인기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삽입곡들이 연이어 음원차트를 휩쓴 지 오래다. 조짐은 이미 나왔는데 제때 조치를 안 취해 지금 상황까지 온 것이다. 자업자득이다.
따라서 지금 상황에선, 일단 이런 구조를 받아들이고 이를 이용할 생각을 해보는 게 옳다. 가장 먼저 생각해봐야할 대책은, 현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의 과감한 폐지다. 지금 콘셉트로는 안 된다. 아이들(idol) 그룹 열혈팬들이나 인코딩시켜 돌려보고 만다. 연예기획사 협찬 방송도 아니고, 범대중적으로 맞닿지 않는 연예오락프로그램은 어불성설이다. 결국 음악 프로그램의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음악을 받아주고 있는 현 상황에서 벗어나, 애초 버라이어티와의 접목을 취한 음악 프로그램이 나와야 한다. 현재로서는 일본식 음악 버라이어티 쇼 형식이 가장 적합하다. TBS ‘우타방’, 후지TV ‘헤이헤이헤이’ 등 일본의 대표적 음악 방송들은 대부분 기존 버라이어티 쇼 형식을 철저히 뮤지션 중심으로 재편한 구성이다.
게스트도 일부 개그맨들을 제외하곤 모두 뮤지션들로만 채운다. 노련한 개그맨 호스트들이 이들과 방담을 나누고, 그 중간에 초청 뮤지션들이 라이브 무대를 갖는다. 그 뒤 다시 토크가 이어진다. 새 싱글을 내놓은 뮤지션들과 그 노래를 소개하기 가장 좋은 콘셉트다. 그러면서도 버라이어티 쇼적인 재미가 있다.
한국은 일단 뮤지션이 등장하더라도 그 중심으로 흐르질 못하다. 입담 좋은 패널들을 다수 포진시킨 탓이다. 초청 뮤지션은 얼굴마담 역할만 한다. 관심이 안 간다. 초청 게스트를 한꺼번에 다수 출연시키는 방식도 좋지 않다. ‘소개’ 효과가 없다. 쇼만 이어질 뿐이다. 토크쇼 기본형식대로, 토크를 파트별로 나눠 한 번에 한 뮤지션만 다루는 것이 적합하다. 음악 소개 역시, 프로그램 말미에 뮤직 비디오 하나 달랑 틀어주고 자막 흘려보내면 끝이다. 안 하느니만 못하다.
채널은 벌써 다른 데로 돌아간다. 프로그램 중간에, 그것도 케이블 및 인터넷에서 언제라도 볼 수 있는 뮤직비디오보다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라이브로 채워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런 형식으로의 재편이 비단 음악계에 ‘봉사’하는 차원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방송사 불황으로 드라마는 줄고 값싼 버라이어티 쇼는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현 시점 버라이어티 쇼 시장은 포화상태다. 더구나 유사콘셉트 프로그램들이 너무 많다. 어차피 새로운 형식을 고안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번 음악 전문 버라이어티 쇼가 개발되면, 이는 신 시장이 된다. 현 시장 상황으로 보아 유사 콘셉트로 3개 프로그램까지는 포용 가능하다. 동일 시장의 콘셉트 다양화 전략으로 이만한 것도 없다. 거기다 일본의 ‘우타방 효과’, ‘헤이헤이헤이 효과’처럼 음악 버라이어티 쇼가 실제 음반 및 음원 판매에 효과를 내주기 시작하면, 방송사와 연예기획사 간 알력관계는 다시 한 번 역전이 된다. 여러모로 이점이 많다.
듀엣가요제 곡 열풍은 대중음악 시장의 ‘장르’ 문제도 함께 드러내주고 있다. 애초 듀엣가요제 곡들 중 가장 뜰 수 있었던 것은 1위를 차지한 퓨쳐라이거의 ‘렛츠 댄스’였다. 1위에 주어지는 ‘쇼! 음악중심’ 출연도 예정돼 있어 그리로 유도되기 쉬웠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보니 상황이 달랐다. 수상권 내에 들지도 못한 명카드라이브의 ‘냉면’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를 가볍게 눌러 제시카는 ‘팀킬’이라는 영예(?)까지 얻었다. 몇몇 음원차트에서는 대세를 탄 2NE1의 ‘아이 돈트 케어’까지 앞질렀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실제 트렌드가 드러나는 불법음원 다운로드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MBC 측도 1위에게만 주어진다던 ‘쇼! 음악중심’ 출연을 ‘냉면’에게까지 할애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냉면’의 어떤 점이 이 같은 ‘빅뱅’을 낳을 수 있었을까. 답은 단순하다. ‘냉면’이 가장 ‘여름용 노래다웠다’는 점 때문이다. 가볍고 발랄한 캔디팝 분위기에서부터 가장 여름풍을 잘 살린 가사와 시원스러운 의상 콘셉트, 상큼한 소녀 이미지까지 여름용 노래가 갖춰야 할 요소는 다 갖췄다. 그리고 대중은 이런 노래에 목말라 하고 있었다.
본래 ‘여름용 노래’ 시장은 꾸준히 존재해왔다. 1990년대 중반 ‘클론’의 ‘꿍따리 샤바라’가 대히트를 기록하자, ‘쿨’ 등의 ‘여름용 그룹’들이 속속 등장했다. 기성 가수들마저 여름에는 ‘여름에 맞는 곡’들로 승부했다. 섹시 이미지의 엄정화도 여름이 되자 ‘페스티벌’로 콘셉트를 바꿔 등장했다. 발라드 가수 윤종신도 ‘팥빙수’를 내밀기도 했다.
비단 한국만의 특수상황도 아니다. 미국의 ‘비치 보이스’, 일본의 ‘튜브’처럼 웬만한 대중문화 시장에서는 항상 ‘여름용 노래’의 특수수요를 채워주는 뮤지션들이 존재해왔다. 마찬가지로, 컨트리 싱어 K.D. 랭 등도 여름에는 그에 맞춰 비치음악을 선보이는 전략을 펼쳤다.
그러나 이 시장은 언제부턴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시장’으로 탈바꿈하게 됐다. 기존 여름용 그룹이 해체되거나 이미지가 고갈돼 더 이상 상품성을 발휘하지 못해도 대체용 뮤지션들이 나오질 않았다. 아이들 그룹 중심으로 대중음악 시장이 재편되면서다. 기존에 쌓여진 팬층을 대상으로 장사한다는 개념이 정착됐기 때문이다.
같은 음악을 여름에 내건 겨울에 내건, 살 사람은 사고 아닌 사람은 안 산다. 그러다보니 자폐화의 덫에 걸렸다. 음악 선곡 역시 시기와 상황별 전략이 아니라 ‘후크송’이니 ‘퓨전 힙합’이니 하는 ‘대세 트렌드’에 집중됐다. 한꺼번에 한 곳으로만 몰리는 ‘동네 축구’ 현상이 일어났다. 그렇게 계속 ‘있는’ 여름용 노래 수요가 무시당하다 ‘오랜만에’ 정곡을 찔러주니 바로 대박이 터졌다는 것이다.
‘냉면’의 예기치 못한 성공은 이처럼 막무가내 식으로 진행된 대중음악계 흐름에 하나의 분수령을 제시해주고 있다. 시장은 세분화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시장의 최상화가 아니라 최적화를 노리는 메인스트림 대중음악계라면, 여름만 되면 비치웨어와 선크림 일색이 되는 홈쇼핑 채널처럼 시기와 상황에 맞는 음악 장르의 수요를 정확히 채워줘야 한다.
대중문화산업에 있어 모든 종류의 기현상은 그저 ‘우연’으로 보기 힘들다. 시장구성의 오류, 보완돼야 할 마케팅 툴, 전략적 전환 요구의 반영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기현상이 일어났을 경우, 어디가 좋아서 잘 됐다는 분석보다 어디가 잘못돼 일어난 현상인지 파악하는 일이 먼저다. ‘무한도전’ 듀엣가요제, 그리고 ‘냉면’의 성공을 통해 드러난 시장의 문제점과 그 개선방향을 확고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시급한 처방이 요구된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