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 보편화·소비지향 문화 영향…미래는 포기하고 현재의 만족에 충실
“너희들은 내일만 보고 살지?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난 오늘만 살아.” 2010년 개봉해 624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아저씨>에서 주인공 원빈의 대사다. 많은 관객들은 양화 속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로 이 부분을 꼽는다. 관객들은 왜 ‘오늘만 산다’는 말에 공감했을까. 관객들 스스로가 ‘오늘’만을 살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이 시대 많은 청년들이 미래보다 현재에 큰 비중을 두는 원인은 다양하고 복잡할 수 있다. 여기에는 개인주의가 보편화된 시대 상황의 변화도 있고 소비지향적으로 바뀐 문화의 영향 등이 있을 수 있다. 혹자는 도저히 준비할 수 없는 미래를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현재에만 집중하기도 한다. ‘카르페 디엠’족이 돼 가는 원인은 다양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 행복에 대한 시각 변화 = 전문가들은 사회변동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가 큰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옛날과 비교해 가족 구성원이 줄어들고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약해지고 경제적으로도 비교적 윤택해지는 등의 변화다. 과거 ‘나’라는 존재를 가족이나 국가 등 내가 속한 집단의 일부로 받아들이던 것과 달리 오늘날의 청년들은 자신의 고유한 삶을 살아가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이를 두고 연세대 정과리 교수는 민주화와 산업화의 성공 이후 "인종 자체가 달라졌다"고 표현했다. 시대상황으로 인한 역사적 사명감이나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등의 책임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것. 정 교수는 "이전까지 저마다 무언가에 속해서 살고 있었는데 90년대 이후 책무에서 벗어나 인생을 즐기게 됐다"고 말했다.
생산과 소비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도 큰 원인으로 꼽힐 수 있다. 성공회대 우석훈 교수는 "21세기 경제 특징이 개인이 문화의 생산자이면서 소비자가 되는 시대"라며 “이 시대에서 자라나면서 문화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 돈을 많이 쓰고 이것저것 고루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른바‘C세대론’이다. 이는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닐슨의 ‘2011 미국 디지털 소비자 보고서’에서 언급된 용어로 ‘직접 콘텐츠를 생산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길 즐기는 소비자층’을 일컫는다. 이들은 문화적 욕구가 강해 그와 콘텐츠에 대해 많은 소비를 한다. 제 아무리 비싼 디지털 기기라도 구매해버리고야 마는 경향이 있다.
◇ 불투명한 미래가 나를 = 알려진 농담 가운데 “1000만원 빚지면 잠이 안 오지만 10억원을 빚지면 잠이 잘 온다”는 말이 있다. 어떻게 일해서 갚을 수 있는 금액을 빚진 경우 어떻게든 갚을 생각을 하고 그 과정에서 겪을 힘든 점 때문에 괴로워하지만 액수가 비현실적으로 너무 커져버리면 아예 포기하게 된다는 것을 뜻하는 재미있는 예시다.
이 농담은 젊은 층에서 ‘카르페 디엠’족이 많아지는 이유에 있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양호경 청년유니온 정책실장은 “그들이 미래보다 현재를 중시하는 원인은 청년이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사회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미래를 준비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커지면서 위의 ‘1억 빚’을 진 것과 같이 포기해버리고 현재를 즐긴다는 것.
미래를 준비하는 단적인 예로 ‘내 집 마련’을 보면 희망을 갖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지난해 4분기 기준 통계청의 전국 가구당 월평균소득과 서울 아파트 한 채당 평균 매매가를 비교하면 돈을 벌어 집을 사기까지 12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의 전부를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았을 때의 이야기다. 이 정도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의식주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젊은이들은 미래를 포기하고 당장의 만족에 충실하게 되기도 한다. 현실을 반영해 인터넷을 중심으로는 ‘잉여’(여분의 인간), ‘루저’(패배자), ‘난 아마 안 될거야’ 등의 유행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우석훈 교수는 “이를 잘 설명하는 게 ‘샤넬백 현상’”이라며 “소득수준은 유니클로인데 샤넬백을 찾는 것은 다른 방식으로 절망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