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올림픽 메달 ‘싹쓸이’… 무관심 속 비인기 종목의 반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멘트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최소 4년에 한 번은 방송을 통해 이 멘트를 접할 수 있다. 올림픽 등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에서 대한민국 선수들이 선전할 때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멘트가 흘러나온다.
‘각본 없는 드라마’라 불리는 스포츠를 더욱 감동적으로 그려내기 위해서일까. 덕분에 대한민국 비인기 종목 스포츠에는 굳어진 이미지가 있다. ‘무관심’, ‘서러움’, ‘열악한 환경’, ‘눈물 젖은 빵’ 등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이미지는 더 이상 비인기 종목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훈련 환경이 과거에 비해 크게 개선됐다는 이유에서다. 야구, 축구 등 인기 종목에서 고액 연봉을 받는 극소수 선수를 제외하면 환경적으로 떨어질 것이 없다는 것이다.
스포츠평론가 신명철씨는 “대부분의 비인기 종목은 공사·금융팀 등에서 적극 후원하고 있다”며 “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모든 종목 선수들의 환경이 크게 개선됐고, 2000년 이후에는 전용경기장 건립 등 훈련 환경과 인프라도 충분히 구축됐다”고 설명했다.
신씨는 또 “비인기 종목이라도 국가대표급 선수들은 대부분 억대 연봉”이라며 “전 세계 어떤 나라와 비교해도 결코 나쁘지 않은 환경”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비인기 종목 선수들은 운동 환경과 조건에 대해 만족스러운 반응이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역도 은메달리스트 이배영(34)은 “선수생활 동안 경제적인 어려움을 느낀 적은 없었다”며 “역도가 다른 종목에 비해 환경이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역도=비인기 종목’이라는 생각도 거의 해본 적이 없다”고 털어놨다.
훈련 환경 개선도 눈에 띈다. 태릉선수촌과 2011년 새롭게 개장한 진천선수촌은 세계적인 종합훈련장으로서 호평이다. 특히 진천선수촌은 2017년까지 3300억원을 들여 총 37개 종목 1115명을 수용할 수 있는 2단계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일부 인기 종목뿐 아니라 모든 종목의 균형 발전을 위해서다.
신 평론가는 “인프라 구축, 꿈나무 양성, 학교체육 활성화 등 비인기 종목 육성을 위한 정부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며 “모든 종목 경기력이 고르게 향상된 나라는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 결실은 올림픽 등 굵직한 스포츠 이벤트에서 결과로 나타났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 13개, 은메달 8개, 동메달 7개로 총 28개의 메달을 획득, 미국·중국·영국·러시아에 이어 메달 종합순위 5위를 차지했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특히 펜싱(6개), 사격(5개), 양궁(4개), 유도(3개) 등 무려 12개 종목에서 메달을 획득하는 고른 활약을 펼쳤다.
‘비인기 종목=무관심’도 오랫동안 굳어진 이미지다. 여자하키 대표팀은 88년 서울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 ‘맨땅의 기적’으로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4년 뒤 열린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3·4위전에서 스페인에게 져 4위에 그쳤다. 경기를 마치고 입국한 여자하키 대표팀의 한 선수는 “메달 못 따니 바로 찬밥이네”라는 말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비인기 종목 선수만이 느끼는 박탈감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신 평론가는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하다 보면 관중 수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며 “적었던 관중이 갑자기 많아지거나, 많았던 관중이 급격히 감소할 경우를 제외하면 관중을 의식할 일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대한민국 스포츠사에 엄청난 족적을 남긴 비인기 종목 스포츠. 그만큼 미래에 대한 기대치도 높을 수밖에 없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동계스포츠 불모지였던 우리나라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와 ‘피겨요정’ 김연아의 등장으로 변방에서 중심으로 우뚝 솟았다. 그러나 인기·비인기 종목의 중요 척도인 팬은 시대 흐름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영원한 인기·비인기 종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실제로 프로레슬링, 프로권투, 고교야구, 민속씨름 등은 과거 인기 종목으로서 황금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그저 추억 속 인기 스포츠로 남아 있다.
역도스타 이배영은 “비인기 종목은 갈수록 선수 양성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역도는 더 이상 올림픽 효자종목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배영은 또 “비인기 종목 선수들이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해온 만큼 비인기 종목 선수 육성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때”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