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16일 전두환 전 대통령과 일가 재산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면서 해외 독재자들의 은닉재산 환수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현재 해외에서는 필리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인도네시아 하지 모하맛 수하르토, 칠레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라이베리아 찰스 테일러 등의 전직 국가수반이 불법 축재한 재산을 숨겨둔 혐의로 정부의 추적을 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 성공 사례가 드물어 우리나라 검찰의 행보에 더욱 시선이 쏠린다.
◇필리핀, 11조 빼돌린 마르코스 재산 중 4조5000억 환수했지만…
필리핀 정부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부정축재 재산을 쫓고 있다. 마르코스에게 암살된 베니그노 아키노의 부인이자 베니그노 아키노 현 대통령의 어머니이기도 한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이 1986년 대통령 직속으로 만든 바른정부위원회(PCGG)가 주축이다.
마르코스는 1965년 대통령에 당선된 후 계엄령과 부정선거 등을 통해 21년간 집권했다. 부인 이멜다 역시 이멜다픽(Imeldafic; 극단적으로 사치스러운) 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만큼 사치를 일삼아 필리핀 경제 파탄에 일조했다.
PCGG는 26년간 마르코스 일가의 자산을 쫓아, 마르코스가 재임 중 빼돌린 것으로 추정되는 100억달러(11조2500억원)의 부정축재 재산 중 약 40억달러(4조5000억원)를 환수했다.
마르코스는 1986년 ‘피플 파워’로 무너져 미국 하와이로 도피해 숨졌다. 그러나 2010년 이멜다는 하원의원에, 큰 딸 이미 마르코스는 일로코스 노르테 주지사에 당선되는 등 마르코스 일가가 다시 정치 전면에 나서고 있다. 남은 60억달러는 아직 찾지 못했지만 PCGG는 최근 긴축 재정에 환수작업 소요경비가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해체설이 나돌고 있다.
◇‘수하르토 주식회사’였던 인도네시아, 독재자 자식들 여전히 초부유층
인도네시아 독재자 수하르토 일가는 더욱 많은 돈을 숨겨놓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하지 무하맛 수하르토는 1968년 인도네시아 제2대 대통령에 선출됐다. 그는 1998년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몰락할 때까지 32년간 철권 통치를 펼쳐 ‘인도네시아는 수하르토 주식회사’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축출된 직후 인도네시아 정부가 조사한 결과 수하르토 일가가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등 세계 11개국으로 자산을 빼돌린 것으로 나타났다. 일가가 탈루한 세금만 최소 25억달러에서 최대 100억달러 수준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과거사 청산은 이뤄지지 않았다. 수하르토를 편드는 집권 여당은 수하르토를 감쌌고, 수하르토는 건강이 안 좋다며 법망을 교묘히 피했다. 결국 수하르토는 자카르타의 저택에서 천수를 다하고 2008년 사망했고, 그의 자식들 6명은 여전히 초부유층으로 살고 있다.
◇리베라리아 독재자 “나 찰스 테일러가 돈 숨겨둔 계좌 아는 사람? 데려와봐” 큰소리
라이베리아 군벌 찰스 테일러는 내전을 일으켜 1997년 대통령이 됐다. 다이아몬드 공급권을 위해 이웃나라 시에라리온 반군단체에 무기를 제공, 11년 동안 12만명이 사망한 시에라리온 내전에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다이아몬드 광산뿐 아니라 목재회사, 국영전화회사 등을 모두 장악했다. 또 세금 200만달러를 그대로 자신의 계좌에 넣거나, 대만 정부가 라이베리아 어린이 에이즈 치료를 위해 보낸 원조금 2400만달러를 통째로 착복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반군이 일어나고 미국의 압력이 거세지자 2003년 나이지리아로 망명했다가 2006년 체포됐다. 2012년 4월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시에라리온 내전에 개입해 민간인 학살을 교사하고 방조한 혐의로 5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ICC가 전현직 국가원수에 유죄판결을 내린 것은 2차세계대전 후 나치독일이 전범 혐의로 처벌된 후 처음이다.
라이베리아 정부와 유엔은 테일러가 빼돌린 재산을 찾기 위해 전세계를 뒤지고 있지만 워낙 철저하게 돈세탁을 거쳐 어려움을 겪고 있다. 7년간 찾아낸 돈이 800만달러에 불과하다. 테일러는 헤이그 교도소에서 “나 찰스 테일러가 돈을 숨겨놓은 계좌가 있다는 사람을 안다면 데려와보라”고 큰소리치고 있다.
◇칠레, ‘피의 독재자’ 피노체트 재산 찾아 피해자 보상 추진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의 은닉 재산은 대법원과 국가수호위원회(CDE)가 조사하고 있다. 2004년 미국 상원위원회가 워싱턴 리그스 은행에서 그의 비밀계좌를 발견하면서 실체가 드러난 피노체트의 재산 규모는 최소 2100만달러(약 240억원)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칠레 언론들은 홍콩 HSBC 은행에 금괴 형태로 예치된 피노체트의 은닉재산만 1억6000만달러 상당으로 추산된다고 보도했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1973년 미국의 지원을 받아 쿠테타를 일으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을 살해하고 집권했다. 1990년까지 이어진 그의 철권통치 기간 정치적 이유로 최소 3197명이 사망했으며 1197명이 행방불명됐고 수만여명이 망명했다.
권좌에서 물러난 피노체트 역시 영국으로 망명했으나 1998년 영국 사법 당국은 살인·납치·고문 등의 혐의로 그를 체포했다. 칠레 사법부는 독재자를 처벌하기 위해 그를 가택연금하고 약 300여 건의 국가범죄로 기소했으나 2006년 갑작스럽게 사망해 사법적인 처벌은 행해지지 못했다.
피노체트 사망 후에도 CDE는 그가 은닉한 재산을 추징해 독재 시절의 인권 유린 피해자들에게 보상할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칠레 사법당국은 이를 위해 미국 등 해외은행 비밀계좌 사건으로 기소된 피노체트의 모든 은행계좌를 압류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