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에는 가물가물했던 그의 존재감은 오히려 사망 소식과 함께 확실히 각인됐다. 21일 온라인 포털사이트에서는 하루종일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몇 안되는 그의 출연작이 사진과 영상으로 돌면서 온라인 세상을 뒤덮었다.
안타까운 사고 소식에 당사자에게는 명복을, 유가족에게는 위로를 건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심은 세상을 떠난 이에 대한 안타까움보다 호기심이 앞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엉뚱하게도 온라인에는 떠난 사람을 엮어내는 갖가지 글과 이야기가 삽시간에 퍼졌다. 비슷한 유형의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난 연예인들까지 관심사로 오르내렸다. 평소 관심 밖이었던, 잊혀진 이들을 다시 끄집어내는 글들이 이어졌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참을 만하다. 이날 사고로 세상을 떠난 당사자를 기억하며 명복을 빌었던 온라인 세상은 금세 가십거리를 찾아 나섰다. 이른바 ‘네티즌 수사대’로 불리는 이들은 사고로 요절한 연예인을, 이제 잊혀져가는 그들의 옛 이야기를 다시 꺼내들었다. 그리고 내키는 대로 이리저리 휘둘러댔다.
심지어 오래 전 사고로 목숨을 잃었던 연예인의 사고 당시 CCTV와 블랙박스 영상까지 찾아냈다. 이같은 네티즌의 노력이 고스란히 반영돼 하루종일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인기 검색어 순위에는 고인들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이날 하루, 먼저 떠나간 방송인들을 단순 가십으로 다뤘던 네티즌들의 횡포에 유가족들은 가슴 깊숙이 묻어두었던, 떠나간 가족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눈물을 흘렸을 거다.
어느 틈엔가 온라인 세상은 갖가지 이슈를 쉽게 잊어버리면서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를 담는 세상이 된 것이다.
불과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여자 축구선수 박은선의 성별 논란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멀쩡하게 다른 여자선수들과 먹고자고 합숙하며 지내온 박 선수에게 실업축구 6개구단 감독들은 때아닌 성별 논란으로 상처를 줬다.
버젓이 공식 문서까지 작성해 축구연맹에 제출했음에도 논란이 커지자 “사적인 자리에서 주고받은 농담이었고 공식 입장이 아닌 이야기가 많다”고 변명했다.
이미 여러 번 국제대회에 참가하면서 국위 선양에 기여했지만 그녀의 성 정체성에 대한 논란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결국 세상은 박 선수의 아픔이 아물어갈 즈음, 또 한번 그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셈이 됐다. 세상은 그녀를 두둔했지만 이슈가 불거진 것 자체가 그녀에게는 상처다.
옛말 ‘부관참시’는 가장 극한 형벌이었다. 사후에 죄가 드러난 이의 무덤을 파내는 형이다. 지금 온라인은 죄없는 사람까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사람까지 다시 들먹이며 또 한번 상처를 주는 세상이 돼버렸다.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상이 조용히 온라인의 바닷속에 가라앉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