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적 유사성으로 인한 해프닝” 요즘 가장 뜨는 유행어다. 10월 8일 아이유가 신곡 ‘분홍신’을 발표했다. 곧바로 표절시비가 일었다. 일부 음악관계자들이 내놓은 해명과 분석이다.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표현이 다시 등장했다. 11월2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자유로가요제’ 에서 박명수가 부른 ‘아이갓씨(I Got C)’가 카로 에메랄드의 ‘리퀴드 런치’를 표절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작곡자 프라이머리측은 “장르적 유사성”이라고 강변했다. 이 말은 또 대중의 귀에 들려왔다. 11월26일 발표된 크레용팝의 ‘꾸리스마스’가‘루팡3세’를 베꼈다는 한 일본 매체의 보도와 함께 네티즌의 표절 논란이 증폭됐다. 작곡가 김유민은 “장르의 유사성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반박했다.
한때 대중가요의 표절논란이 일면 방패막이로 삼던 ‘레퍼런스’‘샘플링’은 사라지고 요즘‘장르의 유사성’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된다. 이것은 어디서 많이 듣는 해명 같다.
학계와 정계, 상당수 전문가와 학자들이 박사논문 표절 주장을 했다. 논문의 저자 문대성의원은 “논문의 표절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독창성에 문제가 있는가 아닌가가 가장 핵심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라는 황당한 말로 표절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허태열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더 가관이다. “저는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고 또 학위나 논문을 활용해 학문적 성과나 학자로서 평가를 이용하려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논문작성 당시 현재와 같이 강화된 연구윤리 기준을 철저히 지키지 못한 점, 원저자와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립니다.”형식적인 사과가 논문표절 의혹에 대한 입장의 전부다.
요즘 최근 이금형 경찰대학장 등 일부 경찰 고위직의 박사논문 표절 의혹이 일부 언론에 의해 보도됐다. 이들의 해명 역시 프라이머리나 문의원, 허 전비서실장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의도를 갖고 한 것이 아니라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라는 실소를 자아내는 해명뿐이다.
표절은 오랜 시간과 엄청난 노력, 그리고 막대한 자본을 들여 만든 타인의 지적재산권을 무단으로 강탈하는 불법행위다. 타인의 아이디어, 창작권, 학문적 권리의 명백한 도둑질인 것이다. 부산대 한문학과 김성진 교수는 ‘한자로 본 문화-剽竊(표절)’이라는 글에서 남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것이 마치 강도질 같다 해서 剽竊이라고 했다고 분석했다.
물론 최근 창작자나 학자, 정치인, 공무원, 의원, 연예인 중 표절을 하지 않았는데도 일부 단체나 사람들이 흠집내기 등 불순한 의도를 갖고 무책임하게 제기하는 표절 의혹의 표적이 된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전문가나 학계에서 명백한 표절이라는 의견과 입장에도 불구하고 궤변과 요설, 형식적인 사과, 혹은 전문용어 몇 개 등장시켜 표절의 책임을 피해나가려 한다.
외국의 사례는 무책임한 우리의 표절범들의 행태와 너무 다르다. 지난 2011년 카를테오도어 추 구텐베르크 독일 국방장관은 박사학위 논문 표절 사실이 밝혀지면서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박사학위 박탈과 함께 말이다. 슈미트 팔 헝가리 대통령 역시 1992년 쓴 박사논문이 표절판정을 받으면서 지난해 대통령직을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오죽했으면 대중은 지난 3월 자신의 석사논문 표절의혹 보도가 나오자 자신의 논문의 표절은 잘못된 것이기에 석사학위를 반납 하겠다고 발언한 연기자 김혜수에게 박수를 보냈을까. 그 박수는 표절이라는 중범죄를 저지르고도 반성은 고사하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표절한 도둑들을 향한 질타는 아닐까.‘I Got C’에 대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는 “교묘하고 노골적인 표절”이라고 주장했다. 많은 음악전문가나 일반인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프라이머리는 표절인정 대신 얄팍한‘장르적 유사성’이라는 표현으로 표절의혹을 피하기에 급급하다.
프라이머리와 표절한 도둑들에게 두 마디 건네고 싶다. “표절을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은 속일 수 없다. 표절은 자신뿐만 아니라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대중의 감동을 빼앗는 파렴치한 행위다”라는 싱어송라이터 김창완의 언급과 함께“표절은 남의 노력과 땀 그리고 권리를 무단으로 도적질한 명백한 범죄행위다”라는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