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시작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사 사이트는 ‘천안함 침몰’로 도배됐다. 한참 배송 중이던 이튿날 조간신문은 전량 회수됐고 다시 판짜기에 나섰다. 이른 새벽이면 배달되는 조간신문은 오전 9시가 넘어서야 각 가정에 배달됐다.
그렇게 천안함 사건이 온나라는 물론 전세계 뉴스를 뒤덮는 사이, 조용히 묻혀버린 뉴스도 있었다. 한 정치인이 불교계의 상징인 서울 봉은사에 외압을 넣고 ‘직영사찰’ 전환을 언급한 사건이었다. 한참 뭇매를 맞던 이 이슈는 천안함 침몰사건과 함께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심지어 관련 정치인을 언급하며 ‘천안함 유일의 수혜자’라는 말까지 나왔다.
지난해 초에는 대기업의 횡포가 도마에 올랐다. 포스코 임원이 기내에서 승무원을 신문지로 때려 논란이 일었다. 얼마 후 벌어진 남양유업의 ‘밀어내기’는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를 대변하며 ‘갑의 횡포’라는 관용어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한 사회적 제도 마련과 법적 소송 등이 맞물려갈 무렵, 일련의 사건들을 단박에 뒤집을 만한 사건이 터졌다.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의 미국 방문길에 따라갔다가 얼토당토않게 성추행을 저질러놓고 도망치듯 귀국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중국 언론이 뽑은 ‘2013 세계 10대 굴욕사건’에 뽑히기도 했다. 이른바 ‘윤창중 성추행 사건’ 탓에 포스코 임원의 횡포와 남양유업의 갑의 횡포 이슈도 파묻히고 말았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개의 새로운 이슈가 쏟아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가운데서 개인의 가치관 정립과 사회현상에 대한 뚜렷한 사고를 정립하기 위해 뉴스를 골아내는 눈을 갖기란 쉽지 않다. 느닷없는 이슈의 이면에는 반드시 그에 따른 반대급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 언론사와 검찰 간 허위보도 공방에 대한 결과가 나오던 날, 때 아닌 가수 서태지와 배우 이지아 이혼사실이 발표되면서 세상의 관심은 흩어졌다. 지난해 대통령 인수위원회 공약이 번복되던 날, 배우 박시후는 성폭행 스캔들에 휘말렸다. 검찰의 ‘4대강 비리’수사가 발표되던 날, 서태지와 이은성의 결혼 발표 소식도 전해졌다. 코레일 파업자에 대해 직위해제가 결정된 지난달 12일, 우리는 검찰이 성매매 여자 연예인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는 소식에 더 귀를 기울였다.
온라인 시대를 사는 우리는 방안에 앉아 클릭 한 번으로 세계 곳곳을 누빌 수 있게 됐다. 언론학적 측면으로 볼 때,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인간은 점차 고립된다. 이를 피하려면 독자는 진정으로 가치있는 뉴스를 찾아야 한다. 언론사가 제공하는 뉴스를 단순히 받아보는 시대가 아니라 독자 스스로 진짜 뉴스를 찾아야 할 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