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제64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은곰상)을 수상한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The Grand Budapest Hotel)’에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주인공이 등장한다.
영화 속 주인공 무슈 구스타브(랄프 파인즈 분)는 모든 방문객에게 친절하고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세계의 부호들은 구스타브와 대화를 나누며 위로를 받고 행복을 찾는다. 호텔 대부분의 손님은 구스타브를 보러 온다.
그는 조금 독특한 취향을 갖고 있다. ‘오 드 파나쉬’ 향수에 집착하고,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낭만 시집의 구절을 외운다. 그는 많은 대화를 시(Poetry)로 나눈다. 그의 대화 말미에는 시 구절이 등장한다. 사랑하는 여인 마담.D(틸다 스윈튼)에게도, 외로워하는 방문객에게도 시를 읊어 준다. 호텔 직원들에게 하는 교육도 시 한편을 낭독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구스타브가 아끼는 호텔 로비보이 제로(토니 레볼로리)는 사랑하는 여인 아가사(시얼샤 로넌 분)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낭만 시집을 건넸다. 구스타브의 추천이었다. 구스타브는 자신의 애제자 제로에게도 낭만 시집을 선물했다. 그의 시 사랑은 대단했다. 마담.D의 살해범으로 몰려 감옥에 갇힌 그는 탈옥에 성공한 긴박한 순간에도 시를 읊었다.
영화의 배경인 1930년대의 유럽에는 시를 외우고 읊는 사람이 많았을까. 어째서 2014년의 한국에서는 시를 외우고 읊는 사람을 찾기 힘든걸까.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시를 외우는 건 둘째 치고, 시집을 찾아 읽는 사람도 보기 어렵다. 어느새 시는 주요 서점의 도서 카테고리에서도 독자적인 영역을 잃었다. 시는 에세이와 함께 묶여 도서 가판대 위에 소개된다. 등단한 기성 시인의 시집이 연 판매량 3000부를 넘기기 어려운 현실의 반영이다.
시집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책의 판매가 저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베스트셀러 목록에서조차 시집은 사라진지 오래다. 대부분의 시집은 초판으로 1000~2000부를 찍는데, 이 중 1000부 이상 팔리는 게 쉽지 않다고 출판계는 말한다. 독자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훌륭한 시집이 많이 출간되지 않았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2010)에서 양미자(윤정희 분)는 시 강좌를 수강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시상을 찾기 위해 그동안 무심히 지나친 일상을 주시하며 아름다움을 찾으러 다니던 미자는 시를 통해 세상이 아름다운 면과 그렇지 않은 면이 있음을 깨닫는다. 시는 한 단어에 세상의 많은 것을 꾸겨 넣는다. 세상을 담은 단어는 한데 모여 시가 되고, 시는 추악하고도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한다.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다. 시에는 함축되고 응집된 우리네 세상이 작게 담겨 있다. 무심코 지나치는 돌멩이가 새롭게 느껴지고, 항상 타고 다니던 버스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을 수 있는 게 바로 시다. 시는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힘이 있다.
김용택 시인은 영화 속에서 “시를 쓴다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시를 쓴다고 마음을 먹는 게 더 어려운거죠”라고 말한다. ‘시를 쓴다’를 ‘시를 읽는다’로 치환해보자. 시를 읽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시를 읽는다고 마음을 먹는 게 더 어려운 것뿐이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무슈 구스타브처럼 언제든 읊을 시 구절 하나쯤은 외워보자. 어제와 같은 세상이 오늘은 다르게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