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화 한국벤처협회 명예회장
하지만 놀랍게도 이 사회의 엘리트들은 냉소적이다. “한국은 이번에도 개혁을 못하고 앞으로 더 큰 사고가 터질 것”이라며 자신의 일이 아닌 양 비판만 하고 있다. 이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패배주의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 개혁에 앞장서는 일이다. 언론도 ‘국가를 개혁할 수 있을 것인가’를 묻는 대신 ‘국가 개혁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화두로 삼아야 한다.
개혁의 핵심은 ‘원칙 정립’과 ‘신뢰 확보’라는 사회적 자산이다. 신뢰는 원칙을 준수해야만 만들어진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과 같이 큰 재난은 늘 작은 원칙을 무시했기 때문에 일어난다. ‘하인리히의 법칙’은 큰 재난의 뒤에 29개의 작은 재난과 300개의 미발생 재난이 있다는 의미 아니던가. 원칙을 준수한다는 것은 단순히 좋은 결과를 도출한다는 게 아니라 과정의 중요성에 더 무게를 둔다는 것이다.
이제는 재물 등 물질적 자산이 아니라 명예심, 자아실현과 같은 사회적 자산을 가꾸어 나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물질 만능주의는 경쟁을 극대화해 사회적 갈등을 부추겨 왔다. 이제는 신뢰라는 사회적 가치를 소중히 하고 개개인의 삶 자체에서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로 승화해야 한다.
그런데 사회적 신뢰를 거꾸로 병들게 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SNS 등을 통해 난무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배 안에 살아 있다는 숱한 거짓 문자들, 민간 잠수부라 속인 홍 모양의 거짓 인터뷰, 구조를 일부러 안 한다는 억지 주장, 해군 관련 한·미 훈련 잠수함 충돌 괴담, 남양주시 중학생의 번호로 밝혀진 이준석 선장의 연락처 유포, 각종 스미싱 문자를 통한 악성 앱 다운…. 아픈 가슴에 다시 못을 박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국가 개혁의 핵심인 사회적 자산, 즉 신뢰를 손상시키는 행위는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 사회적 자산을 추락시킨 만큼의 강력한 벌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사람의 질병은 외부 병균의 침입과 더불어 내부 면역력의 방어벽이 약화될 때 발생한다고 한다. 병균의 박멸과 더불어 중요한 것이 자체 면역력이다. 사회적 신뢰가 쌓인 국가는 이러한 괴담에 대한 면역력이 있다. 독일인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를 보라.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 원칙과 신뢰다.
한국에서 개방되지 않은 분야들이 국가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법률, 행정, 교육, 의료, 금융 등의 서비스 분야들이다. 청년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들이 글로벌 국가 경쟁력에서는 하위권이라는 사실이 개방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는 각종 조사에서 바닥권이다. 강한 힘을 가진 집단들이 개방되고 투명해져야 한다. 잘못된 것보다 숨기는 것을 엄벌해야 한다. 이를 위한 단어가 바로 ‘개방과 공유’라는 웹2.0의 용어일 것이다. 개방된 투명한 사회에서 창조적 도전을 장려하고 실패로 인한 재도전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새로운 한국으로 가는 문이다.
세월호의 희생 영혼들을 추모하고 슬픔과 분노를 되새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국가적 재난을 딛고, 더욱 강한 국가가 되는 것이 젊은 희생에 대한 진정한 위로임을 다시 강조한다. 세월호 사건으로 국민 모두가 자조감에 빠져드는 것은 희생자들에 대한 배신이다. 지도층을 비롯한 국민 모두가 각성하고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에 앞장서는 것이 그들에 대한 어른들의 책임이다. 사회적 신뢰는 오랜 기간 원칙을 준수하면서 쌓여 간다. 이제 그 대장정을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