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세월호 참사에 고통 받고 있는 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세월호 참사는 탐욕스런 자본과 부패한 관료사회, 무능한 정부가 주범입니다. 그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1심 판결이 내려진지 이제 2달이 넘고 있습니다. 피고인의 자리에서 1심 판결을 접한 저는 참담한 심경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1심 재판은 유신시대 사상재판이자 국정원의 예비검속을 합법화한 정치재판이었습니다.
사상재판과 예비검속은 민주사회에서 잊혀져가는 단어였습니다. 단언컨대 이번 사건에서는 어떠한 폭력적 행위도 없었으며 이를 준비하기 위한 아무런 모의도 없었습니다.
기나긴 1심 내내 법정에서 진행된 것은 구체적 행위에 대한 검증이 아니라 피고인들의 말과 생각에 대한 논쟁이었을 뿐입니다. 국정원과 검찰은 정부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로 저에게 징역 12년과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다른 사상을 가진 것이 아니라 다른 사상을 가졌다고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12년 구금과 10년 자격정지 포함하여 20여 년간 정치적 권리를 박탈하였습니다.
이것은 제 개인의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사상의 자유, 생각의 자유, 표현의 자유, 말의 자유가 사라진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후퇴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분노하였습니다. 주먹을 대신해서, 폭력을 대신해서 말을 하는 것이 현대의 정치입니다.
그런데 저의 말에 대해 주먹을 휘두른 것이 국정원과 검찰의 기소요, 1심 재판부의 판결이었습니다. 정치인이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없는 사회가 된 것입니다.
1심 재판부는 저를 총책으로 하는 RO가 존재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저는 RO라는 조직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합니다. 제가 지휘통솔체계를 갖춘 이른바 RO의 총책이었다면 그냥 지침을 내리면 될 일이지 굳이 130여 명이 넘게 한 자리에 모일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검찰은 수십 년 전에 나온 단선연계 복선포치니 하는 생소한 말을 쓰면서 RO가 비밀지하혁명조직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무슨 지하혁명조직이 스스로 조직을 공개하는 130여 명의 모임을 가집니까. 검찰의 논리대로라도 이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입니다.
‘지하혁명조직과 공개’는 형용 모순입니다. 검찰은 지금 동그란 네모가 있다고 우기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그 어떤 지하혁명조직도 스스로 공개한 적이 없습니다. 검찰은 제가 이른바 결정적 시기라는 판단으로, 즉 폭동으로 정권을 타도하고 북이 곧 남침할 것이라는 판단으로 조직을 공개하였다는 것인데, 2013년 봄 박근혜 정권 초기에 지지율 60%를 상회하는 시기를 결정적 시기로 판단하거나, 군사훈련을 전쟁으로 오판할 만큼 대한민국 국회의원인 제가 어리석거나 무모하지 않습니다.
검찰과 1심재판부는 저와 북한이 아무런 연계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북의 남침에 내응하여 남쪽에서 폭동을 일으키려 음모했다고 하였습니다. 검찰 설명에 따르면 북의 대남혁명론이라는 것은 남쪽의 혁명세력이 북한과 연계하여 남쪽에서 폭동을 일으키고 북한의 힘을 빌어 혁명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연계도 없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협의의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각자 알아서 폭동을 일으키고 남침을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입니까. 이건 주먹구구도 아니고 그저 공상일 뿐입니다. 전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1심 재판부는 그럴듯한 주장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검찰의 주장처럼 5월 10일 그리고 12일에 모인 130여 명의 사람들이 내란을 음모하였다면 바로 그 다음 날부터 바쁘게 돌아갔아야 마땅합니다. 실행계획을 짜고 제대로 준비되고 있는지 점검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1심 법정에 나온 국정원 프락치도 다음 첫 번째 회합이 한 달 뒤인 6월 5일이었다고 했고, 그날 모여서 실제 논의한 것은 백두산 관광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과연 130여 명 중 누구의 머릿속에 내란이 있었다는 것입니까.
제가 내란 음모의 D-day를 5.10 또는 5.12로 잡았다면 그 전에 최소한 여기 함께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들과는 모의를 했어야 할 것입니다. 1심 재판부는 제가 소위 ‘3대 지침’을 하달하고 2달 전부터 폭동준비를 지시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에 저는 여기 함께 있는 경기도당 간부들과 모의는커녕 만난 적도 없습니다. 전화 한 통 한 적이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24시간 내내 저를 주시했던 국정원도 잘 알 것입니다. 5,10, 5.12의 내란음모는 준비도 없었고 후속조치도 없었던 셈입니다. 이걸 1심 재판부는 척하면 알고 언제든 ‘명령만 떨어지면 행동을 개시한다’는 식으로 뭉뚱그렸습니다.
사실 이런 정황을 가장 잘 아는 존재는 국정원입니다. 국정원은 5.12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실시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내란을 음모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막기 위한 조치들을 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안행부, KT,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철도공사 등 그 어디도 8월 28일 이전까지 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국정원이 어디에도 연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란음모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 연락할 이유도 없었을 것 입니다.
저와 우리 당원들도 평소와 같았고 다른 모든 사람들도 평소와 같았습니다. 5월 12일에도 5월 12일 이후에도 내란음모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은 내란음모로 둔갑하였습니다.
달걀을 품어주면 병아리가 된다지만, 돌멩이는 아무리 따뜻하게 품어준들 병아리가 될리 없습니다. 그런데 국정원은 그렇게 하였고, 1심 법원은 국정원의 주장을 인정하였습니다.
저는 진보당에 소속된 현역 국회의원입니다. 정치인이 뜻을 같이 하는 당원들 앞에 서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토론을 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고도 마땅한 일입니다. 그 강연에서 나온 주장이 다소 생경하고 낯설다는 평가는 있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공론장에서의 토론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와 동료들의 ‘말’을 짜깁기해서 내란음모로 둔갑시키고 이를 법정에서 다룬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저는 1심재판부가 상식과 법 그리고 양심에 기초하여 저에 씌워진 누명을 벗겨주리라 기대하였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아마 1심 재판부는 제가 내면화된 종북주의자로 그 무슨 말을 하건 무슨 행동을 하건 북의 대남혁명론에 따라 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검찰은 심지어 제가 북과의 연계가 없으니 더 위험하다는 주장까지 하였습니다.
종북이라는 말은 북을 추종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저를 10여 년간 추적하였던 국정원은 제가 북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저에게 종북이라는 낙인을 찍었습니다. 종북이란 말은 그 자체로 모욕적인 말입니다. 자기 머리를 가진 사람이, 이 땅에서 진보정당의 길을 가는 제가 왜 북을 추종합니까.
검찰이 내놓은 이른바 대남혁명론은 하나같이 7~80년대에 나온 것입니다. 빛의 속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사회에서 30년, 40년이 넘은 어떤 이론이 여전히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하는것은 진보에 대한 무지이자 왜곡입니다. 모든 이론은 변화합니다. 저는 한국이 어디로 갈 것인지는 한국 민중이 정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저에게 절대적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민중입니다. 민중은 살아 있는 존재입니다. DJ는 정치는 생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직후에 가진 인터뷰에서 이념은 강을 건너고 나면 버리는 배와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배가 아깝다고 그걸 머리에 이고 길을 걸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화석화된 생각, 교조적 이념에 대해 저는 한 번도 높은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가 그렇게 생각하고 실천해왔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1심때도 밝혔지만 저는 1997년의 정권교체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선거를 통해 합법적이고 평화적으로 정권이 바뀌는 걸 직접 눈으로 보면서 이제는 진보운동이 대중과 함께 새로운 길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이런 확신은 결코 북의 대남혁명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무슨 주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감옥에서 나와서 여론조사와 선거컨설팅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진보진영 내에서는 선거가 아닌 거리에서의 투쟁만이 집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의견이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생각한 길을 꿋꿋이 갔습니다. 그것은 무슨 이념이 아니라 현실이 저에게 가르쳐준 길이었습니다. 저의 이런 생각은 지난 19대 총선에서 진보당의 약진을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혁명은 낡은 것을 새 것으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모든 낡은 것은 결국 새 것으로 바뀝니다. 분단은 낡은 것이고 통일은 새 것입니다. 정치의 대상이었던 일하는 사람들이 정치의 무대에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새것입니다. 낡은 것을 새 것으로 교체하는 것은 어렵고 힘이 들지만 동시에 보람과 매력이 있는 일입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의 최상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혁명의 수단과 방법은 사회발전에 따라 바뀝니다. 군부독재 시절 정권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전민항쟁이었습니다. 4.19가 그렇고 6월항쟁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런 방식으로 정권을 바꿔야 한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선거를 통해서 합법적인 절차와 경쟁을 통해 정권을 바꿀 수 있고 사회의 진보를 도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폭력적 방법은 평화적 방법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검찰은 혁명이라는 단어를 무조건 내란이나 폭동과 같은 말로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낡은 사고입니다. 수십 년도 더 된 북의 대남혁명론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낡은 사고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것입니다. 현실은 이미 변화하였습니다. 평화적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혁명적 변화가 가능합니다. 저는 그런 믿음으로 지난 10여 년 내내 진보정당의 선거승리를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검찰은 또 제가 북과 내응하여 무력으로 통일을 하려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저는 남이 북을 흡수하는 통일도, 북이 남을 흡수하는 통일도 반대합니다. 그것은 전쟁을 동반할 것이며 민족공멸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검찰의 머리 속에는 무력을 통한, 전쟁을 통한 통일만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머리속에는 6.15, 10.4 선언이 열어놓은 평화적 통일의 길이 있습니다.
이처럼, 통일과 혁명에 대한 저의 생각은 수십 년 전에 머물러 있는 공안당국의 그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검찰은 자신의 낡은 사고로 저의 생각을 재단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2012년 정치에 뛰어든 것은, 보다 직접적으로 진보정당의 집권에 기여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거대 양당의 낡은 정치질서를 깨고 민중에 기반한 정당, 진보정당이 집권하는 것이야말로 제가 꿈꾼 새정치요, 혁명이었습니다.
정치인으로서의 활동은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정치활동을 과감하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첫 미래부 장관이었던 김종훈 후보를 CIA 경력을 근거로 낙마시킨 것이나, 주한미군 주둔비 지원의 불합리성을 집요하게 파고든 것도 그런 차원이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미국으로부터 당당한 자주적인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고, 정치활동의 초점도 그렇게 두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한국정치에서는 금기를 범하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무조건 정부와 반대되는 입장만 견지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지난 해 4월 한반도의 위기국면에서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긍정적인 면을 보고, 이에 ‘남북미중 사이의 종전선언’을 통해 영구적 평화체제를 만들어내자고 제안하였습니다. 한반도 위기는 매년 반복됩니다. 누구도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였습니다. 그걸 위해서 저는 한국이 주도하는 4자회담을 제안했던 것입니다.
이런 저의 정치활동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정치활동을 지지하던 반대하건 그것은 법정이 아닌 정치적 공간에서 다루어질 문제입니다. 미국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고 미국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북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긍정적인 측면에 관심을 돌리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입장에 서 있건 어떤 사람의 정치적 입장이 그가 기소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현 정부와 집권당, 보수언론은 제가 처음 정치권에 발을 내딛었을 대부터 집요하게 저를 공격해왔습니다. 그 결과 저에게는 말도 안 되는 주홍글씨가 새겨졌습니다. 이번 사건에서는 아예 1심 재판도 시작하기 전에 모든 피의사실이 유포되었습니다.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을 마구 뒤섞어 놓고 대대적인 여론공세가 퍼부어졌습니다.
세 사람만 우겨대면 호랑이도 만들어 낼 수 있다더니, 저는 이미 도깨비가 되었습니다.
1심은 내란음모가 실체적으로 존재하였느냐의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저의 머리 속에 무엇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단죄하였습니다. 행위가 아닌 사상을, 말을 재판한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견해 차이와 토론, 경쟁을 통해 발전해왔습니다. 생각과 사상이 다르다고 감옥에 보내야 하는 체제는 위험하고 불행합니다.
도깨비나 유령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도깨비나 유령에 대한 두려움, 공포를 조작하는 행위입니다.
제가 가진 나라사랑의 방법이 다른 사람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누구보다 더 우라나라를 사랑합니다. 이에 관한 한 저는 단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번 재판이 끝날 때쯤이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어디까지 왔는지가 결정될 것입니다. 사법정의는 과연 살아 있는지가 확인될 것입니다. 1심 재판부의 구시대적 판결을 바로잡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