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은퇴가 남긴 숙제
“울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눈물 흘리는 팬들을 보며 감정이 복받쳤다.”
떠나는 김연아(24)의 마지막 인사는 눈물이었다. 그러나 ‘피겨 여왕’ 김연아의 눈물엔 남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 피겨 불모지를 피겨 강국으로 끌어올린 기적과 같은 시나리오를 써내려 왔지만 아직 풀지 못한 숙제가 산적하기 때문이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는 한국 피겨스케이팅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고,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올림픽 2회 연속 메달이라는 거룩한 결실이었다.
김연아의 고군분투는 ‘김연아 키즈’의 꾸준한 증가로 이어졌다. 2009년 45명에 불과하던 국내 종합선수권대회 참가자는 4년 만에 88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점프 기술도 향상돼 불과 수년 사이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는 평가다.
그러나 김연아가 이룬 역사적 성과에 비하면 한국 피겨의 현실은 너무나 참담하다. 피겨 전용 링크는 물론 선수들이 마음 편하게 연습할 수 있는 환경조차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연아의 등장으로 피겨 유망주들은 꾸준히 늘었지만 훈련할 수 있는 공간은 오히려 줄었다는 지적이다. 빙상장 건립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선수들만 늘어난 탓이다. 연습 공간은 한정돼 있지만 늘어난 선수들을 수용할 수 있는 빙상장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선수들은 물론 학부모와 지도자들도 오래 전부터 피겨 전용 빙상장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김연아 역시 현역 시절부터 선수들의 훈련 환경 개선을 위해 피겨 전용 빙상장의 필요성을 언급해왔다. 그러나 피겨 전용 빙상장은 김연아 은퇴 후에도 여전한 숙제로 남아 있다.
현재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들은 빙상장 대관이 쉽지 않은 관계로 훈련 때마다 빙상장을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신세다. 전국에 30개밖에 안 되는 빙상장을 쇼트트랙, 아이스하키 등 다른 종목과 함께 쓰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피겨스케이팅은 점프나 스핀 등 고난도 동작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영하 3∼5도로 부드러운 빙질이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빙상장은 수익구조상 아이스하키 기준(영하 11도)에 맞춘 딱딱한 빙질에 맞추고 있다. 피겨 선수들이 대부분 무릎과 허리 부상에 시달리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전용 빙상장 건립을 위한 걸림돌은 막대한 예산이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직후에도 빙상장 건립이 추진됐지만 예산 부족을 이유로 취소됐다. 수익을 포기하면서까지 빙상장을 운영하려는 지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김연아의 고군분투가 믿기지 않는 이유다. 외신들도 한국의 피겨 환경에 대해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러시아 국영 일간지 로시스카야 가제타는 지난 6일 “김연아는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진정한 전설이 됐다”고 호평하면서도 “한국에는 뛰어난 피겨스케이팅 선수도, 해당 종목을 위한 좋은 학교도 없었다”며 한국의 열악한 피겨스케이팅 환경을 지적했다.
이 매체는 또 “선수생활 초기만 해도 그가 여자 피겨스케이팅의 세계적인 스타가 되리라 믿은 한국인은 소수였다”며 “그러나 김연아는 이를 극복하고 자신의 기량을 입증했다”고 덧붙였다.
피겨 스케이팅에 대한 행정도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뛰어난 인재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행정력이 받쳐줘야 한다는 것이다.
피겨스케이팅 선수 육성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일본과 러시아다. 특히 일본의 행정은 우리가 배울 점이 많다. 일본 피겨 스타 이토 미도리는 지난 1992년 알베르빌 올림픽에서 은메달에 그쳤다. 이에 일본빙상연맹은 유소년 발굴 시스템인 이른바 ‘노베야마 합숙’을 시작했다. 결국 아라카와 시즈카가 2006년 토리노에서 아시아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다. 안도 미키, 아사다 마오 등 일본을 대표하는 피겨 스타들은 모두 이곳을 거쳤다.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4년이 채 남지 않았지만 한국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더 늦기 전에 장기적 안목으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 당장의 실적보다 실질적인 환경 개선을 통한 유망주 발급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