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올림은 18일 삼성전자 서울 서초사옥 앞에서 책임 있는 보상과 사과, 노조 설립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장에는 피켓과 플래카드가 동원됐고, 요란한 구호가 등장하는 등 집회를 방불케 했다.
반올림 측은 이날 “지난 6차례의 협상에서 삼성의 진정성이 매우 부족하다고 느꼈다”고 주장했다. 이어 “삼성은 모든 피해 노동자들에게 사과하고 보상해야 하며 제대로 된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지난 13일 삼성전자와 반올림의 6차 대화는 상당한 진전을 보였다. 반올림 측 피해자, 가족 8명 가운데 5명이 밝힌 보상 논의를 우선 진행, 필요하면 실무협의도 가질 수 있다는 뜻을 삼성전자가 받아들이면서 의미 있는 합의가 이뤄졌다. 아울러 삼성전자가 우선 보상 논의 후 기준과 원칙을 세워 다른 피해자에게 적용할 것이라는 단계까지 대화가 진척됐다. 6차 대화에서는 또 반올림 측은 그동안 밝히기 꺼려했던 산업재해 신청자 33명의 명단을 삼성전자에 전달했다. 삼성전자도 반올림이 그간 제안했던 종합 진단을 수용하기로 했다.
백혈병 문제를 둘러싸고 지난 수년간 이어진 갈등을 해결할 첫 단추를 꿰는 듯 했지만, 반올림 측의 이번 기자회견은 이 같은 예상을 뒤집었다. 양 측의 대화가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이날 기자회견에는 6차 대화에서 보상을 수용한 5명의 피해자 및 가족은 참여하지 않았다. 반올림 측이 선보상안에 동의한 5명의 피해자와 가족을 교섭단에서 제외시킨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반올림 내부에서 불협화음이 일고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반올림 측은 “(내부분열 논란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아직 다음달 3일 열릴 7차 대화에 임할 교섭단 참여자가 확정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2주에 한 번씩 협상 테이블이 마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화 장소가 아닌 장외에서 시위를 벌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많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반올림의 행동은) 대화 창구가 없을 때 실력을 행사하는 방법”이라며 “대화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한데도 항의성 기자회견을 여는 것은 진정성 부분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대화 당사자인 삼성전자는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삼성전자는 이날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반올림이 집회를 갖고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해 안타깝다”며 “하지만 인내심과 진정성을 갖고 최종 타결까지 투명하고 진지하게 협상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