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출신 CEO가 대세
국내 제약사에 연구개발(R&D) 바람이 불고 있다. 국내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리베이트 투아웃제 등 불법영업을 막는 정부 시책이 본격 진행되면서 제네릭(복제약) 만으로는 더 이상 회사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게 되면서다. 이에 영업부 출신이 CEO가 되는 전통을 깨고, 연구원 출신 인사를 CEO로 선임·연임시키는 제약사들이 점차 늘고 있다. 동아에스티, 한미약품, 대웅, 종근당, 신풍제약 등이 대표적이다.
동아제약은 지난해 3월 동아쏘시오홀딩스를 설립하며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 전문의약품을 담당하는 동아에스티와 일반의약품을 담당하는 동아제약으로 분할되며 분야를 전문화했다. 이어 동아에스티는 김 부회장의 빈 자리에 또 다시 연구개발의 DNA를 심었다. 2005년 동아제약 당시 개발 본부장을 맡았던 박찬일 부사장을 CEO로 선임한 것이다.
서울대 약대 출신인 그는 사장 취임과 동시에 연구개발 비용으로 매출액의 10% 이상을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연구개발 핵심인력을 확보키 위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인사를 채용하고 있다.
박 사장의 연구개발 의지는 신약 개발로 입증되고 있다. 2006년에 개발한 야심작 수퍼박테리아 타깃 항생제 ‘시벡스트로’, 호중구감소증치료제 ‘듀라스틴’ 등이 국내는 물론 미국과 유럽에서 신약 허가를 받거나 준비 중에 있다. 최근엔 많은 개발비가 투입되는 바이오시밀러 분야에도 본격 진출하며 연구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박 사장은 “연구개발에 역량을 집중해 동아에스티를 명실상부한 연구개발 중심의 제약사로 올려놓을 것”이라며 “2018년까지 매출 1조원을 달성하고, 이 가운데 30%를 해외수출에서 거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미약품의 연구개발 의지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1년엔 이관순 연구개발 본부장을 CEO로 선임하며 연구개발에 속도를 더했다.
이 사장은 한국 신약개발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1997년 국내 최연소 연구소장에 선임되며 업계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미국 FDA로부터 승인 받은 한미약품의 개량신약인 역류성식도염 치료제 ‘에소메졸’을 처음 개발한 사람도 바로 이 대표다. 최근 이 대표는 항암제와 바이오 신약에 역량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표적항암제 ‘포지오티닙’ 기술은 이미 중국과 200억 원에 달하는 기술 수출 계약을 맺었다.
특히 그는 바이오신약 분야에서 식지 않는 열정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월 비만과 당뇨를 한꺼번에 잡는 바이오신약 ‘LAPS-GLP-1/GCG’에 대한 글로벌 1상 임상시험에 착수했다. 아울러 인성장호르몬, 호중구감소증을 치료할 수 있는 바이오신약 개발에도 돌입했다.
이 사장은 “내 새끼처럼 개발한 신약들이 국민들의 건강증진에 기여할 때 큰 보람을 느낀다”며 “어렵고도 고되지만 아무도 가지 않은 연구개발의 길을 가야하는 게 제약회사 본연의 책무”라고 말했다.
그의 뚝심은 신약개발로 이어졌다. 고도비만 치료제 ‘CKD-732(성분명 벨로라닙)’은 유럽에서 희귀의약품 치료제로 지정됐고, 올 2월엔 당뇨병 신약도 출시했다. 앞서 2003년에는 항암제 신약 캄토벨을 선보였는데, 이 약의 개발까지 완료되면 김 대표는 3개 토종신약 개발을 이끈 전무후무한 CEO로 평가될 전망이다.
유한양행 연구소 연구원 출신인 그는 2003년 유한화학 대표이사를 역임한 후 2006년부터 대웅제약을 이끌게 됐다. 이 대표의 신약개발을 통한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대한약학회 약학기술상부터 철탑산업훈장, 기술경영인상, 이달의 과학자상 등7개의 상을 휩쓸었다.
그는 매해 연구개발 투자를 늘려나가면서, 현재 매출액의 11% 가량을 연구개발비에 쏟아부으며 대웅제약의 신약개발을 채찍질 하고 있다.
이 대표는 “우루사, 올로스타 등 스타 의약품을 다수 배출했고, 이를 토대로 한 글로벌 역량 역시 타사에 비해 높은 편”이라면서 “신약개발에 전사적인 역량을 투입해 토종 제약사의 힘을 세계에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