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과 노래, 연기의 3박자를 고루 갖춰야 하는 뮤지컬에선 각양각색의 토양에서 소양을 닦은 배우들이 무대에 선다. 최정원 남경주 마이클리 등 뮤지컬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뮤지컬 배우도 있지만 탤런트, 아이돌 포함한 가수, 코미디언 등도 뮤지컬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시장 외연이 대폭 성장하면서 중소극장부터 대극장까지 지난 한해 동안 2500 편(인터파크 기준)의 작품이 올라가는 국내 상황에선 이에 걸맞은 인적자원의 수요가 높아졌고, 공급 역시 넓은 범위에서 충족됐다.
우선 가수 출신들의 뮤지컬 진출이 봇물을 이룬다. 밴드 YB 윤도현은 12월 뮤지컬 ‘원스’에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됐다. 능숙한 악기 연주, 뛰어난 가창력이 뒷받침된 윤도현이 적격이라는 평가다. 그는 앞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광화문 연가’를 통해 인기몰이에 성공, 역량을 입증받은 바 있다. 국내 초연 10주년을 기념해 오는 11월 개막하는 ‘지킬앤하이드’ 출연 소식을 알린 리사는 본래 가수로 데뷔했다. ‘사랑하긴 했었나요’, ‘헤어져야 사랑을 알죠’ 등의 히트곡을 보유한 리사는 ‘광화문 연가’,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애절한 감성을 드러내왔다.
최근 ‘프리실라’, ‘헤드윅’에서 동시에 트랜스젠더 역을 소화하며 빼어난 연기 기량을 펼친 바 있는 김다현은 ‘슬픈 다짐’, ‘이미 슬픈 사랑’, ‘진혼’ 등의 히트곡을 보유한 록밴드 야다의 보컬로 1999년 데뷔했다. 최근 ‘시카고’에서 원캐스팅을 소화한 아이비는 ‘유혹의 소나타’, ‘바본가봐’ 등 댄스와 발라드를 섭렵한 가수 출신이다. 이외에도 박효신(‘모차르트!’), 밴드 부활 출신 정동하(‘두 도시 이야기’), 휘성(‘조로’) 등이 뮤지컬 무대를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원조 걸그룹 S.E.S의 멤버로서 청량한 음성으로 사랑받은 바다는 선도적으로 뮤지컬로 전향했다. 창작뮤지컬에서 기반을 쌓은 바다는 ‘스칼렛 핌퍼넬’, ‘노트르담 드 파리’, ‘카르멘’을 통해 개성 강한 존재감을 발휘했다.최근 ‘레베카’에서 댄버스 부인 역을 맡아 지난해 초연을 잇는 호평을 이끌고 있는 배우 옥주현은 높은 인기를 구가한 원조 걸그룹 핑클의 멤버였다. 옥주현은 솔로로 전향한 뒤 뮤지컬 ‘아이다’, ‘엘리자벳’, ‘위키드’ 등을 거치며 풍성한 가창력과 특유의 카리스마를 과시하는 최고의 뮤지컬 배우로 부상했다.
바다와 옥주현의 개척 이후, 아이돌의 뮤지컬 활로도 더욱 넓어졌다. ‘지킬앤하이드’ 캐스팅이 확정된 린아는 천상지희더그레이스 출신으로 앞서 ‘해를 품은 달’, ‘머더 발라드’ 등을 거쳐 매력을 발산했다. 또 ‘조로’에서 타이틀롤을 맡아 활약 중인 샤이니 키와 비스트 양요섭은 각각 ‘보니앤클라이드’, ‘요셉 어메이징’ 등을 통해 끼를 뽐냈다. 슈퍼주니어 규현 역시 ‘싱잉인더레인’ 등을 통해 뮤지컬 역량을 진화시키며 증명했다.
특히 아이돌 출신인 김준수는 흥행파워와 실력을 고루 갖춘 뮤지컬 배우로 평가받는다. 2010년 그는 데뷔작 ‘모차르트!’를 통해 당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3000석을 유료점유율 100%에 육박할 정도로 매진시켰다. 이후 파워풀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가창력을 입증받은 김준수는 최근 종연한 ‘드라큘라’까지 국내외 탄탄한 인기를 바탕으로 연일 흥행파워를 과시했다.
바다는 “최근 들어 아이돌 가수 출신이 뮤지컬 무대에 많이 뛰어든다. 열정이 없는 일에 도전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 외부의 조건 때문에 뮤지컬에 뛰어드는 일은 경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탤런트와 영화배우 출신의 뮤지컬 배우도 눈에 띈다. 1995년 SBS 5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KBS 2TV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통해 ‘국민 남편’으로 거듭난 유준상은 10월 고 김광석의 주크박스 뮤지컬 ‘그날들’로 돌아온다. 그는 에너지 넘치는 ‘삼총사’, ‘잭 더 리퍼’는 물론, 강력한 카리스마의 ‘레베카’, ‘프랑켄슈타인’까지 소화하며 뮤지컬에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1994년 MBC 2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청춘스타이자 원조 한류스타로서 인기를 구가해온 안재욱은 10월 개막을 앞둔 ‘황태자 루돌프’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2월 ‘라카지’ 재연의 출연을 확정 지으며 성소수자 역을 통해 다시 한번 팔색조 연기를 뽐낼 정성화는 1994년 SBS 3기 공채로 데뷔한 개그맨 출신이다. 정성화는 ‘영웅’, ‘레미제라블’, ‘맨 오브 라만차’를 거치며 선굵은 연기로 코믹한 이미지에 탈피해 캐릭터 스펙트럼을 넓혔다. 최고의 실력파 배우로 각광받는 한지상은 연극 배우 출신이다.
바다는 “연기, 춤, 가창력이 복합된 뮤지컬에서 가수 출신이라는 타이틀로 한계를 지을 필요가 있나. 무엇보다 융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옥주현은 “아무래도 가수였고 알려진 사람한테 바라는 몫이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광고 효과를 기대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결국 공연을 보러오는 모든 분께 만족을 드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해져야 하는 것은 제 노력이 다라는 것이다. 이름 하나만으로는 어느 순간 사라진다”고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