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물놀이를 하다가 귀에 물이 들어간 아이가 자꾸 피리소리가 들리자 친구에게 귀를 맞대고 들어보라고 한다. “아무 소리도 안 들려”라고 하자 몹시 실망한다. 나는 이렇게 크게 들리는데! 시골 주막의 작은 방에 여러 과객이 함께 투숙했다. 한 사람이 코를 심하게 골아 다른 사람들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견디다 못해 흔들어 깨우고 “코 좀 골지 말라”고 했더니 “내가 언제 코를 골았느냐?”고 발끈 성을 냈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이 공작관문고자서(孔雀館文稿自序)에 쓴 이야기다.
이명(耳鳴)은 자신만이 아는 병이요, 코골이[鼾]는 자신은 모르고 남이 먼저 아는 증상이다. 이명은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지만 비한은 정말 곤란하다. 기차소리 폭포소리 요란하게 뿜어대고 씩씩거려 다른 사람 한숨도 못 자게 해놓고는 아침에 깨어 “내가 코를 골았나?” 하는 사람을 보면 정말 때려주고 싶다. 자기 코고는 소리에 스스로 놀라 깨는 사람도 더러 있긴 하지만, 코골이들은 남의 괴로움을 잘 모른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고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이명에 걸린 바보다. 어리석기는 ‘엄이도령’의 도둑과 마찬가지다.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비한에 걸린 멍청이다. 대부분의 코골이들은 남이 코골이를 지적해 주면 고마워하기보다 화부터 낸다. 그런데 귀와 코에만 이런 병통(病痛)이 있는 게 아니고 공부든 뭐든 세상살이가 다 마찬가지다.
중국 명나라의 유학자 여곤(呂坤·1536∼1618)이 지은 ‘신음어(呻吟語)’는 공직자들이 읽으면 좋은 수신서다. 이 책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눈 속에 환상의 꽃이 어른거리면 무엇이든 잘못 보게 되고, 귀울음이 들릴 때면 무얼 들어도 잘못 듣게 된다.” 그러니 선입관을 가지고 일을 처리하지 말고 언제나 마음을 비워 두라는 뜻이다. fused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