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년대식 경영, 저금리·저성장시대 맞게 바꿔야…우리銀 민영화 성공하려면 매각요건도 현실적으로
국내 금융 부문의 최고 싱크탱크인 금융연구원이 지난달 16일 새 수장을 맞았다. 한때 아시아 금융허브를 꿈꾸기도 한 한국 금융업은 현재 변변한 글로벌 기업 하나 키워내지 못했다는 실망과 자괴감을 낳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래 금융경제에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신임 신성환(53) 금융연구원장에 거는 기대가 크다.
신 원장은 지난 1일 이투데이와 가진 취임 후 첫 언론 인터뷰에서 금융 및 경제 현안에 대해 무엇보다 현실적이면서도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했다. 교수 출신이기에 사고가 다소 이론적이고 추상적일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를 깨고 실용성에 초점을 맞춘 명쾌한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금융을 비롯해 경제, 재무, 연금, 채권 등 다양한 부문에서 전문지식을 쌓은 것은 물론 정부, 공사, 금융사 등 화려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여러 기관에서 활동한 대외경험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신 원장은 저금리저성장 등으로 어려워진 은행 경영여건을 해결할 수 있는 타개책으로 “예대마진에 안주하는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라고 ‘좋은 게 좋은 거다’식의 정답지 같은 답변을 하기 보다는 “은행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라고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또 역대 금융위원장이 번번이 실패한 우리은행 매각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시각을 환기시켰다. 현 우리은행 3가지 매각요건(공적자금 회수 극대화, 빠른 민영화, 금융산업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이 비현실적인 점을 꼬집은 것. 임종룡 신임 금융위원장이 최근 이 세가지 원칙을 고수할 것이라는 뜻을 밝힌 가운데 신 원장의 발언이 우리은행 매각에 새로운 물꼬를 틀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아래는 신 원장과의 일문일답
△저금리저성장 시대로 갈수록 은행 경영 여건이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나라 금융산업은 결과론적으로 내수산업의 특성을 띠게 됐다. 이런 가운데 은행들이 1980~90년대 고성장·고금리 상황에서의 모습을 현 저금리ㆍ저성장 시대에서도 유지하고 있다. 저성장저수익이란 경제 환경에 맞게 은행의 모습이 변해야 한다. IT기술도 크게 발전했다. 결국 지금 상황에서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구조조정이다. 다른 방법이 없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당장 찾기도 현실적으로 힘들다. 환경이 변했으니 인력감축 등 (몸집을) 조금 더 가볍게 만드는 게 필요하다.”
△은행 구조조정은 큰 반발에 부딪힐 것 같다.
“노조, 고용법 등이 걸려 있어 구조조정이 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주변 환경이 급변했는데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해 나가는 것은 힘들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어느 선을 넘으면 선택을 하든, 선택을 하지 않든 현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정부가 우리은행 매각에 매번 실패했다. 우리은행 민영화가 가능한가.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 빠른 민영화, 금융산업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 등 현 우리은행 매각의 3가지 대원칙은 추상적이다. 또 사후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매각자(정부)는 팔았다가 가격이 크게 오를 것을 걱정하고 있다. 매각에 성공하려면 사후에 전혀 문제가 없겠다 할 수 있을 정도로 매각 조건을 구체적, 객관적으로 변경 및 완화하거나 일부 조건을 삭제해 매각을 좀 더 유연하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를 전망한다면?
“연구원의 올해 공식 성장률 전망치는 3.7%인데 현재는 3%대 초반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 2%대로 내려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러 부문 중에서도 수출과 소비를 특히 우려하고 있다.
△저금리저성장저물가 저투자의 4저 극복 방안은?
“4저(低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고민이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러한 경제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 금융연이 장기적으로 고민해 나갈 문제다. 여기서 한가지 분명한 것은 경제심리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소비와 투자가 위축돼 경제가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 있다. 단기적으로는 어떻게든 소비자와 투자자의 심리를 호전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재정을 더 확장적으로 운영하는 게 필요하다. 결국에는 누군가가 돈을 써야 하는데 정부와 민간의 여력을 비교해 보면 정부 쪽이 훨씬 더 양호하다.”
△가계부채 우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나라 가계부채 수준이 국제적으로 높은 수준인 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향후 금리가 오를 경우 이자를 훨씬 많이 내야 해 굉장한 충격이 올 것이 분명하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면 더 심각한 충격이 발생할 것이다. 가계부채는 또 향후 금리정책에도 상당한 제약 요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부채를 줄여나가야 하는 것은 분명한데 그 과정이 굉장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연구원은 이 고통을 어떻게 최소화할지를 고민해 방안을 제시할 것이다.”
△지난달 24일부터 판매되고 있는 연 2%대 중반의 은행 저리 대출인 안심전환대출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가계부채 문제를 완화시키기 위해 내놓은 고육지책이라고 본다. 안심전환대출이 이미 시행된 상황에서 적절성을 논의해 봐야 실익이 없다. 안심전환대출로 경제 참가자들에게 (빚 탕감 등의) 잘못된 기대를 심어주는 부작용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또 안심전환대출 판매로 은행의 손실이 불가피하다. 한국경제의 방어선인 은행의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전향적인 정책이 요구된다.”
△지난해 주전산기 교체를 둘러싸고 내홍이 벌어지는 등 ‘KB 사태’가 금융계 주요 이슈가 됐다. 당시 사외이사로 재직했는데, 재발하지 않기 위해 조언한다면?
“주주를 대표하는 이사회가 회장이 수행해야 할 주요 업무와 목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이를 회장이 취임시 경영계약으로 맺는 방법을 도입했으면 한다. 이렇게 해야 회장이 자기 권한을 가지고 임무를 수행할 수 있고, 잘했음에도 (외부 압력에) 나가야 하거나, 못했음에도 연임하려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금융연이 연피아(연구원+모피아의 합성어) 논란의 중심에 있다. 또 과도하게 친정부적인 성향이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연구원에서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이지 연구원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금융연은 금융 전문가들이 밀집해 시너지를 내는 조직으로, 연구원이 사회 활동을 하고 난 후에 조건에 맞으면 돌아올 수 있게끔 인사 정책을 펼 것이다. 또 금융연은 정부 정책의 밑바탕이 되는 연구 서비스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잘못된 정책을 옹호하는 식의 정권 눈치보기는 없을 것이다.”
△금융연의 조직 운영 계획은.
“임기 3년 동안 연구원이 역량을 집중할 3가지 연구 주제를 선정해 1~2주 후 공개할 예정이다. 어려울수록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국제사회에서 금융연의 인지도가 취약하다. 국내 주요 이슈를 중심으로 국제 콘퍼런스 등에 많이 참여해 대외 위상을 높일 것이다. 또 상당한 근거와 논리를 바탕으로 칼과 같이 예리한 연구 결과를 내놓겠다고 약속한다. 내가 연구원을 떠날 때 우리나라 금융산업에 한줄기 빛이라도 비출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