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형 전 현대경제연구원장
그런데 어떤 기업이 R&D 등에 막대한 투자를 하여, 질병을 극복할 새로운 신약, 예를 들어 ‘타미플루’를 개발한 결과 ‘독점기업’이 되어 버렸다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타미플루’에 대한 독점적 이윤은 불확실한 R&D투자에 대한 대가로 봐야 하지 않을까? 최근 기업들의 성패는 R&D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새로운 제품개발로 연결되는 R&D는 점차 그 규모가 막대해진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어느 기업이 R&D를 통한 새로운 제품 개발에 성공하게 되면, 대부분의 국가들은 해당 기업이 그동안 R&D 개발에 투입한 엄청난 비용을 보전해주는 의미로 ‘특허(Patent)’라는 제도를 통해 다른 기업들이 동종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도록 경쟁을 금지해 버린다.
즉, 법률적으로 해당 기업을 일정 기간 ‘독점기업(Monopoly)’으로 오히려 그 지위를 보호해 주는 것이다. 만일 이 같은 보호장치가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아마 아무도 막대한 R&D에 투자를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또 한 번 생각해 보자. 최근 창조경제 등의 영향으로 모두 구글 또는 애플 페이스북 같은 기업을 창업하려 한다. 왜 그러한가? 바로 이러한 기업들은 모두 해당 사업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결제 시스템 회사인 페이팔(PayPal)을 창업한 피터 틸(Peter Thiel)은 그의 유명한 저서 ‘Zero to One’에서 “0에서 1이 되려면 창조가 필요하다”고 갈파한다. 앞으로 누구도 컴퓨터 운영체제(OS)를 만들어서는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가 될 수 없고, 누구도 검색 엔진을 만들어서는 구글(Google)이 될 수 없는 등 현재의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독점’이 바로 ‘창조’의 가장 중요한 인센티브라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독점을 악으로 볼 것인가, 말 것인가의 판단은 결국 ‘독점’의 결과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정당성을 부여받느냐의 문제다. 고대 중국 한(漢)나라 때 벌어진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염철논쟁(鹽鐵論爭)’이 바로 국가가 독점해 온 ‘소금, 철, 술’ 등의 사업을 민영화할 것인가, 아니면 국가가 독점할 것인가의 논쟁이다. 이 논쟁을 정리하면, 정부의 입장은 소금, 철 등의 민영을 금지함으로써 지방의 특정 세력이 지나치게 거대화하는 것을 막고, 또 이 전매사업을 국가가 독점함에 따른 독점이익으로 흉노와의 전쟁 경비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반면, 민간의 입장은 염철의 민영화야말로 농업생산을 촉진하고 백성을 부유하게 하며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기본으로, 염철 등 독점사업의 민영화를 통해 독점이익을 백성들에게 돌려주자는 것이다. 한나라 정부의 대(對)흉노 강경책도 장기적으로는 효과가 없으므로, 전쟁을 중지하고 거기서 절약되는 군비를 국가경제에 환원시키자는 논리다.
결국 수단보다는 결과에 대한 평가 문제로 귀결된다. 돈을 버는 수단, 예컨대 독점이란 형태가 정당성을 부여받으려면 그 독점의 결과가 사회에 얼마나 유용하였는가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재벌기업들은 독점적 지위에 준하는 시장영향력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과연 독점적 지위에 걸맞게 세계시장과 경쟁할 새로운 제품의 R&D 개발을 앞장서서 하고 있는가? 혹시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손쉬운 사업들에 더 열중하는 것은 아닌가? 또한 그들은 제2의 삼성이나 제2의 현대를 꿈꾸며 열심히 창업한 신생기업이 순조롭게 커 나갈 수 있을 만큼의 기업토양을 제공하고 있는가?
아직까지는 기대치보다 부족한 것 같다. 이것이 재벌들을 끊임없이 규제하자는, 그리하여 그들의 독점적 지위를 제한하자는, 여론이 계속 제기되는 이유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