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의 최대 관심사 연봉협상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갑(甲)과 을(乙)의 눈치 싸움이 가장 치열한 때죠. ‘최선을 다했다’는 오너의 말에 ‘이번엔 오르겠지’란 야무진 기대를 안고 협상장에 들어서지만 늘 남는 건 실망뿐입니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취준생들에게는 부러운 얘기고, 칼바람 맞고 쓰러진 희망퇴직자들에게는 먼 나라 사담이겠죠. 하지만 숨만 쉬고 살아도 집값이 감당 안 되는 직장인들에게 ‘1% 인상’은 인생 계획을 새로 짤 만큼 절박하고 간절합니다.
지난 2014년 취업포털 커리어에서 직장인 779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봤는데요. 10명 중 8명(78.9%)이 ‘만족 못 한다’고 답했습니다. 직장인이 기대했던 인상률은 평균 9.06%였지만 실제 오른 건 그 절반도 안 되는 4.07%였다고 하네요. ‘퇴사 압박인가?’란 의심이 들게 하는 연봉 삭감 응답 비율도11%나 됐습니다.
이유가 돈 때문이냐고요? 아닙니다. 70%에 달하는 응답자가 ‘통보에 가까운 연봉협상 방식’을 가장 큰 불만으로 꼽았습니다. ‘노사 간 대화단절→연봉정책 이해부족→불만 가중’으로 이어진 겁니다.
회사 연봉정책을 모르는 미생들, 생각보다 많습니다. 비밀유지서약에 따라 선후배 할 거 없이 월급봉투를 꽁꽁 감추다 보니 비교가 쉽지 않죠. 그래서 직장인들은 연봉협상 시즌 때마다 삼삼오오 모여 ‘올해 평균이 얼마야?’를 주제로 서로의 귀동냥을 늘어놓습니다. 깐깐하고, 꼼꼼할 것 같은 미국 미생들도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연봉정책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비율이 20%에 불과하다고 하네요.
최근 임금근로시간 정보시스템과 같은 연봉정보 비교사이트가 생겼지만 직업별, 학력별, 연령별 평균으로 공시되다 보니 현장에서 미생들이 체감하는 정보의 비대칭은 여전합니다.
‘노동의 대가’인 연봉은 개인적 문제 아니냐고요? ‘연봉 계급’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온라인 커뮤니티에 떠돌고 있는 ‘수저 계급론’ 의 일종입니다. 이에 따르면 연봉 10억원 이상 받으면 ‘신’이고요. 5억원 이상~10억원 미만을 받으면 황제입니다. △3억~5억원 ‘황족’ △1억~3억원 ‘왕족’ △8000만~1억원 ‘귀족’ △5000만~8000만원 ‘부르주아’ △3000만~5000만원 ‘시민’ △2000만~3000만원 ‘평민’ △2000만원 이하 ‘혁명가’로 나뉩니다. 소득이 너무 낮아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과세미달자는 ‘몽상가’라고 하네요.
임금 양극화는 경제성장의 걸림돌입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2014년 대기업 정규직의 평균 연봉은 6278만원입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그 절반인 3323만원에 불과하죠.
성별에 따라서도 차별을 받습니다. 육아와 출산으로 경력 단절이 생기는 여성이 상대적으로 불리합니다. 지난 2014년 500대 기업(매출 기준)의 남녀직원 간 연봉 격차는 2600만원에 달합니다. 똑같은 일을 해도 여직원이 매달 220만원의 임금을 덜 받는 셈이죠.
노사가 모두 만족하는 연봉협상은 없습니다. 그래서 대화를 통해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경영진은 연봉 책정 경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하고, 직원은 자신의 능력을 냉철하게 판단해 응해야 합니다.
자신의 월급을 90%나 삭감해 직원 연봉을 7만 달러(약 8400만원)로 올려준 그래비티페이먼츠의 최고경영자(CEO) 댄 프라이스의 용단이 그저 먼 나라 얘기는 아니겠죠? 미생인 저도 이번 연봉협상이 잘 마무리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