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도에서 만난 사람] 지바 후미오 골프클럽 명장, “내 클럽은 80점…언젠간 100점짜리 만들 것”

입력 2016-02-09 07:52수정 2016-02-09 07:52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33년 경력의 골프클럽 명장 지바 후미오(55) 씨는 현재 일본 효고현(兵庫縣) 간자키군(神崎郡) 가미가와(神河)에 위치한 조디아 골프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오상민 기자 golf5@)

쌔~~앵! 쌔~~~앵! 요란한 금속음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금속은 굉음과 함께 요란한 불꽃을 일으키며 제 몸을 깎아냈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 단조 아이언 헤드의 모습을 갖춰갔다. 고철 덩어리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은 33년 경력의 골프클럽 장인 지바 후미오(55ㆍ千葉文雄)다.

그는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일본 효고현(兵庫縣) 간자키군(神崎郡) 가미가와(神河)에 위치한 조디아골프(ZODIA GOLFㆍ전 지바골프) 공장에서 보낸다. 그가 이곳에서 하는 일은 금속 덩어리를 갈고 두들기며 완성도 높은 골프클럽 헤드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기자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는 아이언 헤드 연마에 몰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의 인터뷰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평소에도 말이 없는 성격인데다 좀처럼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공장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궁금한 것들을 하나둘 물었지만 답변을 얻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다행히 저녁식사를 함께하며 인터뷰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일과를 마치고 공장을 나서니 어느덧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자동차로 30분쯤 달렸을까. 히메지(姫路)에서도 제법 번화한 거리가 나타났다. 그리고 한 야키니쿠(고기구이) 전문점에서 그와 마주했다. 그는 술과 고기를 좋아했다. 한국음식도 좋아해서 매운 음식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건 담배다. 하루 3갑을 피울 만큼 헤비스모커란다.

▲지바 후미오 씨는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공장에서 골프클럽 만드는 일에 할애한다. 그가 아이언 헤드 하나를 완성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열흘 전후다. (오상민 기자 golf5@)

“담배를 40년 동안 피웠어.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피웠을 거야(웃음). 골프채를 만들기 시작한 게 33년 됐으니까 골프클럽 경력보다 오래됐네.” 담배가 좋긴 좋았나보다. 담배 이야기는 장시간 닫혀 있던 지바 씨의 말문이 열게 했다. “학교 다닐 땐 공부를 안 했어. 문제가 많은 학생이었지.” 지금의 지바 씨를 보면 좀처럼 상상이 가지 않았다. “대학도 안 나왔어. 고등학교 졸업하고 곧바로 일을 시작했는데, 이 일 저 일하다 어떻게 골프클럽 만드는 일이 눈에 들어왔지. ‘아, 이건 내 일이구나’ 싶더라고.” 골프클럽 이야기가 시작되자 진지한 모드로 돌아왔다.

그는 일본에서 알아주는 골프클럽 명장(名匠)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클럽을 80점이라고 했다. “완성품을 보면 항상 어딘가 부족하단 생각이 들어. 사실 마음에 안 들어(웃음).”

그는 월 2회 정도 필드에 나가 자신의 골프클럽을 테스트한다. “내가 만든 채로 내가 쳐봐도 느낌이 좋아. 그날은 잘 맞는 날이야. 근데 안 맞는 날은 ‘무슨 클럽이 이래?’라는 생각이 들어(웃음). 내가 만들었는데 말이지. 그래서 유저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니혼슈(정종) 한 잔을 들이켰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골프클럽엔 완성이란 게 없어. 인간의 감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잖아. 그래서 골프클럽 만드는 일이 어렵지만 매력이 있는 거야. 정말 하면 할수록 빠져드는 일이지. 앞으론 부족한 20%를 채워야해.”

▲그가 사용하는 망치는 33년 그의 골프클럽 경력을 대변한다. 골프클럽 만드는 일을 시작한 이래 단 한 번도 망치를 교체하지 않았다. (오상민 기자 golf5@)

골프클럽은 지바 씨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사실 그는 골프클럽과 인연을 맺기 전까지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떠돌이 신세였다. 그러다 다른 누군가가 만든 수제 단조 아이언 헤드를 본 후 이전에 없던 욕구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골프채 만드는 일에 모든 것을 걸었다.

물론 그의 골프채가 처음부터 유명세를 탄 건 아니다. 일본의 ‘골프 영웅’ 아오키 이사오(74)의 아이언을 OEM(주문자 상표 부착)으로 제작하면서 그의 숨은 실력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가 사용하는 망치는 그의 골프클럽 제조 경력을 대변한다. 지바 씨의 손때 묻은 망치는 33년간 닳고 닳아 매끈하기까지 하다. 골프클럽을 만들기를 시작하면서 단 한 차례도 망치를 교체한 적이 없다는 그는 “낡은 게 좋아. 손에 익숙하거든. 새로운 거 사용하면 손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잖아. 일하면서 습관이 있는데 그 습관이 망치에 그대로 남아 있어. 내 손이나 업무 스타일에 꼭 맞는 거지. 아마 평생 사용할 거야.”

▲요즘 그에게도 고민이 생겼다. 어느덧 50대 중반이 되어버린 그에게도 후견인이 필요하지만 골프클럽 만드는 일에 선뜻 나서는 젊은이가 없단다. (오상민 기자 golf5@)

그렇게 골프클럽 만드는 일에 33년이란 세월을 받쳤다. 하지만 요즘 들어 그에게도 고민이 생겼다. 어느덧 50대 중반이 되어버린 그에게도 후계자가 필요하지만 골프클럽 만드는 일에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 “기술이 있어도 고객이 없으면 장인도 존재할 수가 없어. 요즘은 고객도 장인들도 점점 줄고 있는 추세지.” 다시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는 깊은 한 숨을 뿌연 연기로 대신했다.

지바 씨가 단조 아이언 헤드 하나를 완성하기까지는 열흘 전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런 속도라면 시즌 중 주문 물량을 소화하기란 불가능하다. 어떻게든 후견인이 필요하지만 그의 눈에 비친 후견인은 아직 없는 상태다. “마음에 드는 친구가 없어. 하려는 사람도 없고. 힘든 일이야. 그래도 스스로 좋은 물건을 만들었을 땐 성취감이 대단한 일인데 말이지. 주변에서 ‘좋은 물건 감사하다’고 말해줄 때 일할 맛이 나지. 그 힘으로 지금까지 버텨온 것 같아.”

점점 취해가는 그의 얼굴엔 33년 진솔한 골프클럽 역사가 배어 있었다. 참으로 믿음이 가는 사람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고철을 두들기고 연마하며 아이언 헤드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을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