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스위니 토드’로 여는 뮤지컬의 또 다른 문

입력 2016-04-15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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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한국 관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뮤지컬 작곡가는 미국인인 프랭크 와일드혼이다. ‘지킬앤하이드’, ‘황태자 루돌프’, ‘스칼렛 핌퍼넬’, ‘드라큘라’, ‘몬테 크리스토’, ‘보니 앤 클라이드’, ‘데스 노트’ 등 그가 작곡한 뮤지컬은 대부분 한국에서 공연되고 롱런했다. 그는 또 ‘천국의 눈물’, ‘마타하리’ 두 편의 대형 창작뮤지컬을 작곡하기도 했다. 한국 관객들은 10편이 넘는 창작뮤지컬을 작곡한 장소영 음악감독보다 프랭크 와일드혼을 더 잘 안다.

유럽에서 산업혁명 이후 경제적 힘을 지니게 된 대중들이 어렵고 지루한 오페라의 대체재로 버라이어티쇼 형태의 오락적 종합예술을 찾으며 변화되어 온 장르가 뮤지컬이다. 태생적으로 음악이 기반이다 보니 뮤지컬에서 작곡가의 음악적 구성력은 작품의 골격이고 성격이며 이야기인 셈이다. 그렇게 유럽에서 출발한 뮤지컬은 미국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뮤지컬 산업이 되었고, 세계 최고의 브로드웨이 시장을 만들었다. 작품성의 권위를 인정받는 최고 관문인 토니상도 미국에 존재한다.

브로드웨이의 최고 작곡가는 한국 관객들에게는 낯선 스티븐 손드하임이다. 그는 뮤지컬 작곡가들이 가장 존경하는 작곡가로 미국 현대 뮤지컬 음악의 상징이자, 토니상을 8회나 받은 최다 수상 작곡가이기도 하다.

1990년대 초반, 동숭아트센터 기획부장으로 일할 때 생소한 두 청년이 한국에 꼭 소개하고 싶다며 스티븐 손드하임의 ‘숲속으로(In to the Woods)’를 들이밀었다. 한국에 뮤지컬 장르가 정착되기도 전인 그때 접한 그의 음악은 충격이었다. 뮤지컬에서 흔한 오프닝 넘버, 프로덕션 넘버, 소스타퍼 등은 아예 없었고 등장인물마다 고유의 선율을 붙여 음악이 캐릭터와 함께 행동했다. 특히 가사의 억양을 살려주는 독특한 멜로디에 가사 음절에 맞게 박자를 변화시키는 전혀 새로운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뮤지컬 음악은 정서의 전달이 아니라, 대사와 상황과 인물의 전달이라고 외치는 듯했다. ‘숲속으로’는 ‘오페라의 유령’을 제치고 1988년 토니상 작품상을 받았다.

스티븐 손드하임의 이름을 또 인상적으로 접한 것은 ‘렌트’와 ‘틱틱붐’, 단 두 편의 뮤지컬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천재 작곡가 조나단 라슨의 ‘틱틱붐’ 한국 라이선스 공연에서였다. 오랜 무명 뮤지컬 작곡가가 드디어 브로드웨이에 진출하게 되는 상황을 스티븐 손드하임의 전화를 받는 것으로 표현했다. 그가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 작곡가인지, 또 조나단 라슨이 그를 얼마나 존중하는지, 단 한 장면으로 모든 것을 설명했다.

스티븐 손드하임은 성공과 사랑을 테마로 한 스토리 중심의 미국의 뮤지컬 쇼 시장에 사회적 문제나 인물의 심리 갈등을 테마로 던지면서 실험성과 다양성을 시도하도록 뮤지컬 시장을 변화시켰다.

콘셉트 뮤지컬의 대명사인 ‘컴퍼니’와 ‘어쌔신’, ‘스위니 토드’는 한국에서도 라이선스 공연됐다. 그러나 번번이 낯선 체험에 그쳤다. 특히 ‘스위니 토드’ 한국 초연은 대극장을 강렬한 무대 미학으로 채운 완성도로 수많은 마니아를 낳았지만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고, 2년 전에는 배우 문제로 재공연이 무산됐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는 리바이벌할 때마다 토니상, 드라마 데스크상, 로렌스 올리비에상을 휩쓰는 ‘스위니 토드’가 한국에서는 여전히 마니아 작품인 것이다.

그런데 올해 재공연되는 ‘스위니 토드’는 얼마 전 캐스팅 발표와 함께 흥행을 보장받게 됐다. 한국 뮤지컬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거론되는 배우 조승우가 출연하기 때문이다. 평소 한국 뮤지컬 관객의 뮤지컬 선호도와 선택권이 다양해지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배우 조승우의 행보를 환영한다. 서정적 멜로디와 배우의 파워풀한 가창력에 심취한 한국 관객들에게도 스티븐 손드하임이 알려질 것이 명확하고, 그래서 관객들이 뮤지컬 세계의 또 다른 문을 열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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