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생물학자 프랜시스 크릭(1916.6.8~2004.7.29)은 현대 생물학의 새 시대를 연 인물이다. 케임브리지대 연구원 시절 이 대학 캐번디시연구소에 유학 중이던 미국의 제임스 왓슨과 친분을 쌓게 됐다. 두 사람은 1953년 4월 ‘네이처’지에 공동으로 논문을 실었는데, 이것이 바로 ‘DNA의 이중나선 구조’다.
유전물질이 DNA로 됐다는 사실은 1952년 모리스 윌킨스와 여성 과학자인 로잘린 프랭클린이 X선 분석을 통해 발견한 상태다. 남은 과제는 DNA의 구조를 밝혀내는 것. 크릭과 왓슨은 윌킨스와 프랭클린이 찍은 DNA X선 사진을 토대로 열띤 연구 끝에 DNA가 이중나선형 구조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크릭과 왓슨, 윌킨스는 이 공로로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다. 프랭클린은 아쉽게도 1958년에 사망하는 바람에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크릭은 1977년 케임브리지를 떠나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캠퍼스로 자리를 옮긴다. 분자생물학의 아버지인 크릭이었지만 1980년대 이후로는 신경과학 분야에 관심을 갖고 의식에 관한 연구에 집중한다. 크릭은 1994년 ‘놀라운 가설’이라는 책에서 “인간의 의식과 정신활동은 신경세포와 뉴런, 그에 연관된 분자와 원자들의 작용에 불과하다”고 주장해 의식에 관한 생리학적 접근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
‘지적인 외계인이 생명체의 씨앗을 지구에 뿌려 오늘날과 같은 생태계가 탄생했다.’ 공상과학 소설과 같은 얘기이지만 크릭은 이를 진지하게 과학적 가설로 만들었다. 그는 1973년 생화학자 레슬리 오겔과 함께 이런 주장을 담은 ‘정향 범종설’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외계인까지는 아니더라도 혜성이나 소행성이 지구에 떨어져 최초의 생명체를 구성한 물과 유기물질을 전달했을 것이라는 가정은 현재 설득력 있는 이론으로 여겨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