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실손의료보험 개선안으로 상품구조 개편안을 내놨지만 3000여만 명의 기존 가입자들이 신상품으로 원활히 이동할지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실손의료보험은 지난해 말 기준 3200만 명이 가입한 ‘국민보험’이다. 하지만 과도한 상품표준화로 소비자 선택권이 제약되고, 과잉진료 등 도덕적 해이를 유발해 보험료 상승을 일으킨다는 문제점이 지적돼왔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지난 13일 실손보험 상품구조를 획일적인 표준형에서 ‘기본형+특약 추가’로 개편하기로 했다. 꼭 필요한 진료는 저렴한 보험료의 기본형으로 보장하고, 과잉진료가 잦은 도수치료, 수액주사 치료 등은 특약으로 분리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금융위는 기본형만 가입하면 기존보다 최대 40% 보험료가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예컨대, 현 40대 남자가 실손보험에 가입하면 15000원을 부담해야 하지만, 신상품 기본형에 가입하면 8500원만 부담하면 된다. 물론 근골격계(4000원)나 수액주사치료(500원) 등 별도 특약을 선택하지 않을 경우다.
금융위는 기본형만 가입할 경우 보험료가 대폭 내려가는 만큼, 기존 가입자의 신상품 이동은 2~3년 내 완료될 것이라고 관측한다.
이동훈 금융위 보험과장은 지난 16일 열린 ‘실손의료보험 제도개선’ 세미나에 참석해, “실손보험 계약 유지율이 낮은 점을 고려하면 가격이 저렴하고 소비자 선택권도 보장되는 신상품이 나올 시 2~3년 안에 가입자들이 갈아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망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실손보험 계약 유지율은 1년차 90.5%, 2년차 78.7%, 3년차 68.6%, 4년차 58.6%, 5년차 48.5% 등으로 가입 유지율은 낮은 편이다.
또한 금융위는 기존 가입자들 상당수가 저렴한 보험료를 찾아 신상품 기본형으로 이동하면, 기존 상품 손해율 악화로 보험료가 올라 신상품 가입 유인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현 실손상품 가입자인 3200만 명 모두 신상품으로 갈아타는 데엔 여러 제약요인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신상품 ‘특약’ 보험료가 인상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특약으로 분리된 근골격계나 수액주사 치료 쪽에 과잉의료가 몰리면, 손해율 악화와 보험료 인상이라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과잉의료가 잦은 진료를 특약화하는 것은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며 “특약된 항목의 손해율이 악화되고 그만큼 계속 보험료가 인상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기부담금이 없는 실손보험 표준화 이전 가입자는 신상품으로의 전환 유인이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손보험상품은 2009년 9월까지 판매된 표준화 이전상품(자기부담금 없음), 2009년~2013년까지 판매된 상품(3년 갱신), 2013년~현재 상품(1년 갱신) 등 3가지로 구분된다
표준화 이전 실손보험 상품들은 자기부담금은 전혀 없고 의료비가 전액 보장된다. 현재 실손보험 비급여 부문에 대한 자기부담금은 20%다.
문제는 표준화 이전 계약 건수가 전체 실손보험 계약건수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절대 다수라는 점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2009년 표준화 이전 가입자들은 자기부담금 없이 100% 보장 받는데 굳이 신상품으로 이동할 유인이 있겠냐”며 “괜히 신상품으로 전환하려다 건강 악화 등 문제로 가입이 거절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특약 분리하는 방식의 상품구조 개선만으로는 실손보험의 근본적인 개선이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6일 개최된 ‘실손의료보험 제도개선’ 세미나에서도 비급여 진료 항목 표준화 등 근본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다.
비급여 진료는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진료로 항목 표준화가 안 돼 과잉진료를 부추겨 보험료를 인상시킨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감사원 ‘의료서비스 관리실태 감사결과’에 따르면 총 1만6680개 비급여 항목 중 명칭 등이 표준화돼 가격비교가 가능한 것은 1611개(9.7%)에 불과하다.
이날 이재구 손해보험협회 시장업무본부장은 “실손보험이 나쁜 보험이 된 것은 비급여 과잉진료 때문”이라며 “상품구조는 개선하면서 비급여 문제를 함께 해결하지 않으면 미봉책에 불과하고, 비급여 문제에 대한 비정상의 정상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대환 동아대학교 교수도 “(상품구조 개선 등) 미세한 조정은 할 필요 없을 정도로 비급여 의료만 제대로 관리하면 웬만한 것은 다 해결된다”며 “이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비급여 코드 표준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