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경의 미디어버스(media-verse)] ‘위법과 합법 사이’…취재원 보호 단상

입력 2016-09-2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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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팀장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비밀 감시 프로그램, 이를 통한 무차별적인 도·감청 실태를 3년 전 전 세계에 폭로한 전직 NSA 계약직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

스노든이 돌린 기밀 문서를 주요 정보원으로 삼아 보도에 나섰던 미디어는 크게 네 곳이었다. 영국 가디언과 미국의 워싱턴포스트(WP), 뉴욕타임스(NYT), 그리고 인터셉트(The Intercept). 인터셉트는 특히 스노든의 폭로를 최초로 보도한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글렌 그린왈드가 참여한 미디어로, 그린왈드는 스노든 특종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았고, WP 역시 그랬다.

그런데 이 네 곳 중 세 곳은 미국 정부에 스노든 사면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한 곳은 한창 일고 있는 ‘스노든 사면론’에 공식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주인공은 WP. WP는 17일(현지시간) ‘스노든을 사면해선 안 된다(No pardon for Edward Snowden)’라는 제목의 사설을 냈다. 스노든은 폭로 이후 러시아로 망명해 있는 상태다. WP는 국가 안보에 심각한 손상을 끼칠 수도 있는 정보를 유출했으니 형사 처벌이 당연하고, 협상을 통해 어느 정도 정부가 관용을 베푸는 것은 가능할 수 있지만 정부나 스노든 모두 이에 관심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이 이 이야기로 만든 영화 ‘스노든’이 막 개봉된 시점이자 미국의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번 정권에서 스노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여론이 일고 있는 참에 스노든 보도로 상까지 탄 미디어가 반기를 든 것은 매우 눈에 띄는 일이다.

스노든이 ‘법을 어긴 내부 폭로자(Whistle-blower)’인 건 사실이다. 백악관은 스노든이 1급 기밀을 폭로, 간첩죄를 지었으며 미국으로 돌아와 기밀 누설에 대한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분명한 입장이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최근 스노든이 귀국하면 “법에 부합하는 공정한 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 연방검찰은 스노든을 정부 재산 탈취 및 허가 없이 국방 정보를 제공한 혐의, 통신 정보에 관한 기밀을 폭로한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법원에서 유죄가 인정되면 여지없이 감방행일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미국이 전방위적 불법 도ㆍ감청을 한 것이 사실이란 것 아닐까.

흥미로운 건 미국엔 사건을 제보하는 취재원 ‘딥스로트(deep throat)’ 보호가 가능한 법이 마련돼 있다는 점. 정부 문건이 있어야만 가능했던 특종 보도 때에도 유출자에게 범법자란 꼬리표를 붙이지 않았던 전례가 있다. 1971년 NYT가 1945~1967년 미 국방부가 베트남 전쟁에 개입한 사실을 담은 1급 기밀문서 ‘펜타곤 보고서’를 공개했던 것. 정부 요청으로 법원으로부터 보도금지 요청을 당하자 NYT는 WP로 임무를 넘겼고 WP에 보도금지 요청이 내려지자 보스턴글로브, 시카고트리뷴으로 바통을 넘기며 릴레이 보도를 했다. 미 연방대법원은 결국 “신문이 자신의 권리 내에서 당연히 할 일을 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워터게이트 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때의 딥스로트는 죽어가던 때에 밝혀진지라 어찌해 볼 수도 없긴 했지만 법의 심판을 받진 않았다.

우리나라엔 그런 장치조차 없다. 대통령 측근인 정윤회 씨가 인사 등 국정에 개입했단 의혹을 보도한 세계일보는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할 뻔했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한 내부 문건을 입수해 보도했다는 증거자료는 제출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문건 작성자는 자살했다. 문건 유출 경위가 중요한가, 보도된 것이 사실인지 가려내는 게 중요한 것인가. 스노든 사면 논란이 잠자던 기억과 취재원 보호법 제정 필요성을 다시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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