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엔 250만, 300만원 됐는데…이젠 부부가 벌어 200만원이 목표” 네 식구 생계 걱정, 노점상의 한숨
“네 식구 입에 풀칠하던 이 장사도 곧 끝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해만 해도 그럭저럭 먹고살았는데, 올해는 찬바람이 불면서 하루 10만 원 매출이 가뭄에 콩 나듯이 하네요.”
서울 미아삼거리역 인근 숭인시장 끝자락에서 야채 가게를 하는 김모(42) 씨는 원가와 가겟세를 제하고 이달 쥐는 돈이 100만 원도 안 될 것이라며 한숨 먼저 내쉬었다. 부인도 식당 주방 보조로 일하면서 김 씨 부부가 한 달에 버는 돈은 200만 원 남짓. 지난해만 해도 매달 250만 원, 300만 원을 넘긴 적도 있었으나 언제부터인지 월 200만 원 버는 게 목표다. 지난 5월 10만 원을 올려 40만 원을 내야 하는 두 칸짜리 월세와 애들 교육비를 내면 생활비, 난방비가 빠듯할 것이라며 걱정이 태산이다.
서민경제가 추락하고 있다. 한때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장밋빛 청사진은 온데간데없고, 한국 경제에는 먹구름만 가득하다. 소득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헬조선’이라는 신조어에 고개를 끄덕이는 국민들도 부쩍 많아졌다.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 악화, 가계부채 부담 증가, 월세 전환 가속화로 서민들의 주머니는 얇아질 대로 얇아진 지 오래다.
“내수 위축에 김영란법 시행으로 소상공인들의 매출은 평균 30% 급감했다. 최근 조류독감(AI)마저 확산하면서 음식점 폐점도 잇따르고 있다. 이 같은 소비위축 현상이 일시적이면 좋겠지만, 대부분 낙관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관계자)
“그나마 겨우겨우 버티는 이들이 많다. 문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그다지 나아진 것이 없지만, 내년에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상공인이 부담하기에는 높은 수준인 임대료가 지속적으로 유지된다면 결과적으로 시장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강남대 부동산학과 김영곤 교수)
서민경제의 몰락은 경제의 활력을 저해하고, 성장률을 더욱 끌어내리는 악순환을 초래할 것으로 경제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지난 9월 시행된 청탁금지법과 산업계 구조조정,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은 서민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실제로 국민의 주머니 사정을 나타내는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2분기에 전기 대비 0.4% 감소했다. 아직 지표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3분기도 만만치 않다. 잡힐 듯했던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는 다른 나라 이야기가 돼 버렸다.
국민들은 조선ㆍ해운업 등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취업 기회도 점차 줄어든다고 느끼고 있다. 취업기회전망CSI는 지난 9월 말 80에서 10월 79로 1포인트 떨어졌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식업 운영자의 68.5%가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매출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이들 업체의 평균 매출 감소율은 36.4%였다. 한국요식업중앙회 관계자는 “요식업은 한두 달만 자금이 회전되지 않아도 폐업을 고려해야 한다”며 “창업자 대부분 자본력이 넉넉하지 못하기 때문에 폐업은 곧바로 거리로 내몰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당장 생활비로 쓸 돈이 없어 적금을 깨는 사람도 늘었다. 지난해 42.6%이던 적금 중도해지율이 올 9월에는 45.6%로 껑충 뛰었다. 보험 해지환급금도 지난해 상반기 14조600억 원에서 올 상반기에는 14조7300억 원으로 4.8% 늘었다.
미국의 시장금리 인상이 가시화하면서 1300조 원에 육박한 국내 가계부채의 ‘뇌관’이 터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잖게 나오고 있다. 특히 마이너스통장과 연계된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이 제2금융권에서만 7조5000억 원 늘었다. 은행 이용이 불가능한 저신용 서민들이 생계가 어려워지자 이자 부담을 무릅쓰고 제2금융권에서 급전을 빌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