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한국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에 대한 특허 침해 조사에 나섰다. 트럼프 미국 정부의 한국에 대한 통상압박이 태양광 패널과 세탁기에 이어 반도체까지 확대되는 모양새다. 이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반도체 슈퍼호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돌발 악재가 될 수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ITC는 지난달 31일 특정 웨이퍼 레벨 패키징(WLP) 반도체 기기 및 부품과 해당 반도체가 들어간 제품에 대한 ‘관세법 337조’ 조사를 개시했다. 이 조사는 미국의 반도체 패키징시스템 전문업체인 테세라의 제소에 따른 것이다.
테세라는 삼성이 WLP 기술과 관련된 미국 특허 2건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WLP는 패키징을 간소화해 웨이퍼 단계에서 반도체 완제품을 만들어내는 기술로 완제품의 부피가 줄어드는 장점이 있다.
테세라는 ITC에 자사 특허를 침해한 삼성 반도체 제품은 물론 반도체를 탑재한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등의 수입금지와 판매 중단을 요청했다. 테세라는 삼성 갤럭시S8과 갤럭시노트8에 탑재된 전력반도체(PMIC)칩을 특허침해 사례로 들었다. 최악의 경우, 삼성전자 갤럭시S8과 갤럭시노트8 등 최신 스마트폰 수입이 금지될 수 있다는 얘기다.
ITC는 아직 이번 사건의 쟁점에 대해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ITC는 사건을 담당할 행정법 판사를 배정하고 조사 개시 45일 이내에 조사 마무리 시한 등 조사 일정을 정할 방침이다. ITC는 관세법 337조에 따라 미국 기업이나 개인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한 제품의 수입금지를 명령할 수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ITC 조사 대상이 될 처지에 놓였다. 미국 반도체업체 넷리스트는 지난달 31일 ITC에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모듈 제품이 넷리스트의 미국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조사를 요청했다.
미국 산업계는 한국과의 경쟁에서 뒤지거나 최근 호황기인 품목을 중심으로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 기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이다.
최근 월풀은 삼성전자와 LG전자 세탁기가 미국 세탁기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는 주장했고, ITC는 자국 산업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ITC는 오는 21일 구제조치 방법 및 수준을 결정하고, 12월 4일까지 이 보고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ITC는 지난달 청문회를 갖고 한국, 중국, 멕시코에서 수입된 태양광 전지에 35%의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권고안을 마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1월까지 구체적인 조치를 결정할 방침이다.
앞서 2013년에는 ITC가 애플의 제소를 받아들여 갤럭시S, 갤럭시S2, 갤럭시넥서스, 갤럭시탭 등 해당 삼성전자 제품의 미국 내 수입과 판매를 금지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통상압박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며 “7일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하는 가운데, 우리나라 정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