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KIKO) 사태는 기업에만 위기였다. 어떤 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누군가는 감옥에 수감됐다. 철학자 미셸 푸코가 얘기한 것처럼 감옥에서 길들여진 그들은 지금도 세상이 반갑지 않다. 고통속에 10년을 산 이들은 키코로 일자리, 생계, 그리고 가족을 잃었다. 반면 키코 사태의 중심에 있는 관료와 은행 관계자의 삶은 너무나도 대비된다.
금융위원회과 금융감독원은 2008년 8월 1일 키코 관련 현황과 대책을 발표했다. 당시 발표는 대책이라기보다는 상처였다. 기업의 욕심이 키코 사태의 원인이라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당시 금융위원장은 전광우(68) 코리안리 사외이사였다. 그는 결과가 수없이 바뀐 엉터리 대책을 발표한 이후에도 승승장구했다. 전광우 사외이사는 금융위원장 재직 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2008년 금융감독원장은 김종창(69) 삼천리 사외이사였다. 그는 금감원장 재직 이후 아시아사항공 사외이사, 삼천리 사외이사를 지냈다. 꽉 닫힌 이 사회에서 왜 관료를 해야 하는가 묻는다면 이들의 사례를 예시로 들지 않을 수 없다.
키코를 기업에 적극 판매한 외국계 은행의 수장들의 삶도 순탄했다. 하영구(64) 당시 한국씨티은행장은 은행장 역임 뒤 금융지주사의 회장을 맡았다. 그는 2014년부터는 은행연합회 회장을 지내고 있다. 무려 10년간 그는 은행장, 회장, 또 회장을 지내며 금융권에서는 부러운 존재가 됐다.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조윤선(51) 전 장관도 키코와 무관치 않다. 그는 키코 사태 당시 한국씨티은행의 부행장이자 법무본부장이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국회의원, 장관, 대통령비서실 비서관을 역임한 그는 법원의 판결이 기업에게 불리하게 나오도록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법은 권력에만 법이였다.
양승태(69) 전 대법원장은 키코 사태 민사소송에서 은행측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를 통해 나온 해당 결과는 변호사들이 키코를 맡아달라는 기업의 간청을 손사래치게 만든 결정적 계기였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현재는 구속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 개입 사건을 파기, 각하하며 희대의 결론을 낸 인물이다. 올해 대법원장에서 물러난 그는 사법 적폐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키코 피해기업 관계자는 “키코 피해 기업은 대부분 사라졌다”며“자금 지원의 실효성은 없어졌기에 법의 정의가 실현되야만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