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77) 전 대통령이 14일 뇌물수수와 횡령 등 '피의자'로 출석해 검찰에 조사를 받고 있다.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조사를 받던 서울중앙지검 10층 1001호실에서다. 혐의가 20여 개에 이르는 만큼 검찰과 이 전 대통령 측이 다음 날 새벽까지 치열한 공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 朴 조사받은 1001호실서 조사...영상에도 담겨
이 전 대통령은 검찰 직원인 사무국장 안내를 받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 1010호 특수1부장 검사실로 올라갔다. 이곳에서 한동훈(45·사법연수원 27기)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와 만나 티타임을 했다. 조사 목적과 절차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서다. 이어 같은 층에 위치한 1001호 조사실로 향했다. 지난해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조사를 받은 곳이다.
이 전 대통령은 책상을 사이에 두고 검사와 마주 앉아 조사를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송경호(48·29기) 특수2부장검사와 신봉수(48·29기) 첨단범죄수사1부장검사가 번갈아 들어와 혐의를 추궁한다. 이복현(46·32기) 특수2부 부부장검사는 조서 작성을 위해 조사 내내 참관한다.
이 전 대통령 뒤쪽에는 변호인 책상이, 왼쪽에는 수사관이 앉는 책상이 놓여있다. 변호인은 이 전 대통령 옆자리에도 앉아 변호할 수 있다. 이 전 대통령 측에서는 판사 출신 강훈(64·14기) 변호사를 중심으로 박명환(48·32기)·피영현(48·33기)·김병철(43·39기) 변호사가 나섰다. 두 명씩 두 팀으로 나뉘어 번갈아 이 전 대통령을 변호할 것으로 보인다.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밖에서 안을 볼 수 없게 창문에는 블라인드를 쳤다.
식사하거나 쉴 때는 조사실에서 바로 연결된 1002호 휴게실을 이용한다. 이곳에는 응급용 침대와 소파 등이 준비돼있다. 이 전 대통령은 점심과 저녁 모두 휴게실에서 도시락이나 배달 음식을 먹는다. 박 전 대통령은 점심에 직접 준비한 도시락을 먹었고, 저녁은 죽으로 해결했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을 '대통령님'이라고 불렀다. 다만 조서에는 '피의자로' 적힌다. 박 전 대통령 역시 '대통령님'이라고 불렸고, 검사를 '검사님'이라고 칭했다.
이 전 대통령이 영상녹화에 동의해 조사 과정은 모두 영상에 담긴다. 형사소송법은 수사기관이 피의자 진술을 영상으로 녹화할 수 있도록 한다. 피의자의 경우 녹화 사실을 미리 알려주면 동의는 필요 없다. 녹화 영상은 법정에서 증거로 신청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 조사 당시 당사자의 강력한 반대로 검찰은 원활한 조사를 위해 영상녹화를 하지 않았다.
◇'다스 실소유주·뇌물' 혐의만 20여개...공방 치열할 듯
이 전 대통령이 받는 혐의는 크게 다스 실소유주 의혹과 뇌물수수 혐의로 나뉜다. 핵심은 자동차부품업체 다스의 실소유주가 누군지다. 이 전 대통령이 다스를 차명 보유한 사실이 밝혀지면 다스 300억 원대 비자금 조성 관련 횡령·배임 등 혐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다스가 BBK 투자금 140억 원을 되돌려받는 데 국가권력을 동원했다는 의혹 역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삼성이 다스가 미국에서 진행한 BBK 투자금 반환 소송 비용 60억 원을 대납해 준 부분도 '뇌물' 혐의를 빠져나가기 어렵다.
때문에 검찰도 이번 조사에서 다스 관련 이 전 대통령의 진술을 받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검찰은 이미 이 전 대통령 친형 이상은 다스 회장 등 다스 전·현직 임직원 진술을 통해 '다스는 이 전 대통령 것'이라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다스 설립의 종잣돈이 된 도곡동 땅 역시 이 전 대통령 소유라고 결론내렸다. 이 전 대통령 '비밀창고' 영포빌딩에서 발견한 각종 문건 역시 이를 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여전히 다스는 자신과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다스 최대주주는 이상은 회장"이라며 혐의를 모두 부인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이 전 대통령 혐의는 110억 원에 달하는 불법자금 수수 의혹이다. 그는 우선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측근들을 통해 국가정보원에서 특수활동비 총 17억5000만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그밖에 △삼성그룹(60억 원)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회장(22억5000만 원) △대보그룹(5억 원) △ABC상사(2억 원) △김소남 전 의원(4억 원) 등이다.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1억 원 이상 뇌물 수수는 10년 이상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형이 무거운 만큼 검찰이 집중 추궁할 부분이다. 이 전 대통령은 '몰랐다' '지시한 적 없다'는 취지로 대답할 것으로 보인다.
조사는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검찰은 혐의 내용이 방대하고 전직 대통령을 여러 차례 부르기 어려운 만큼 조사를 한 번에 끝내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자정이 넘은 심야 조사에는 동의가 필요하다. 조사가 끝나더라도 직접 피의자 신문 조서를 읽고 확인하는 절차가 남는다. 피의자는 자신이 말한 대로 적히지 않거나 사실과 다른 부분을 삭제·수정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조서 열람이 길어지면 이 전 대통령 귀가 시간은 더욱 늦어진다. 박 전 대통령은 조서를 읽은 7시간을 포함해 21시간 넘는 검찰 조사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