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어원을 추적하다 보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 어원이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부질없다’는 말도 그중 하나이다. ‘부질’은 ‘불질’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때의 ‘불’은 ‘火(불 화)’, 즉 영어의 ‘fire’에 해당하는 말이고, ‘질’은 ‘선생질’, ‘순사질’처럼 직업이나 직책을 비하하는 뜻이 담긴 접미사이다. ‘불질’은 불을 다루는 일을 낮춰 부르는 말이다.
강하고 단단한 쇠를 얻기 위해서는 쇠를 불에 달구었다 물에 담갔다 하는 일을 여러 번 반복해야 했는데 이런 반복 작업을 ‘불질’이라고 했다. 제대로 된 불질을 겪지 않은 쇠는 물러서 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쓸모가 없다. 여기서 ‘불질없다’는 말이 ‘쓸모없다’는 뜻을 갖게 되었고, 이 ‘불질없다’가 나중에 ‘ㄹ’탈락이라는 음운변화를 거쳐 ‘부질없다’는 말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1958년부터 1960년대 초 사이에 중국은 모택동의 주도 아래 중공업 중심의 경제발전을 목표로 철강산업에 주력하는 대약진 운동을 벌였다. 농기구는 물론 숟가락과 젓가락마저 거두어 들여 용광로에 넣어 철을 생산하고자 했다. 그러나 ‘불질’을 제대로 하지 않은 철강산업은 결국 아무런 쓸모없는 고철덩어리만 양산한 채 부질없는 짓으로 끝나고 말았다.
농기구마저 잃게 된 농민들은 원시시대처럼 나무를 뾰족하게 깎아 쟁기나 삽을 대신하게 되었으니 농업생산량은 급감했고 게다가 가뭄이 겹쳐 수천만 명이 굶어죽는 비극이 벌어졌다. 새로운 기술의 개발 없이 인민들의 열정만을 강요한 대약진운동은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모택동의 잘못된 판단과 아집이 인민들로 하여금 부질없는 짓만 하게 하다가 결국 아사지경(餓死之境)에 빠지게 한 것이다.
우리 정치권에도 편견과 오만에 빠져 날마다 부질없는 비난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나라와 국민을 생각한다면 비난을 위한 비난을 하는 부질없는 짓을 멈춰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