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식구 감싸기’식… 지방은행 ‘허술’ = 규준안의 7조(채용의 공정성)에 따르면 감사부서 또는 내부통제부서가 선발전형 단계마다 혹은 최종발표 전 채용관리 원칙과 절차 준수 여부, 사전 심사기준 부합 여부 등을 점검하게 된다. 규준안에는 부정합격자 채용 취소(31조)와 부정한 채용청탁의 신고 및 처리(30조)에 관한 규정을 담았다.
하지만 은행 자율에 맡기다 보니 내부 고발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은행이 자체적으로 채용비리 정황을 포착하더라도 ‘제 식구 감싸기’식 처분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금감원이 지난해 11월 은행 채용시스템 자체 점검을 맡긴 결과 은행들은 부정청탁 채용 사례는 전무한 것으로 보고했지만 현장점검 결과 11개 은행에 대해 22건의 채용비리 정황이 나왔다.
특히 지방은행의 경우 시중은행보다 당국의 감시와 견제가 느슨하고 감사위원추천위원회에 CEO(대표이사)가 포함돼 있는 등 지배구조가 허술해 내부통제 시스템에 규준안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는 주 영업기반이 지역 근거지를 두고 있는 지방은행의 특수성도 한몫한다.
지방은행 관계자는 ”한 다리 건너면 서로 다 알 정도로 네트워크가 좁다 보니 부탁이나 어떤 요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지역 국회의원같이 파워가 센 지역 유지의 경우 부탁이 들어오면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암암리에 횡행… ‘외부 청탁자’ 처벌 불가 = 금감원 검사 결과 은행에서 벌어진 채용비리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청탁에 따른 특혜채용이다. 금융감독원의 11개 은행 현장검사 결과 지원자 중 사외이사·임직원·거래처의 자녀·지인 명단을 별도 관리하고 우대요건 신설, 면접점수 조정 등의 방법으로 특혜 채용한 사례가 9건 적발됐다. 신한은행은 2013년 채용 과정에서 현직(당시) 임직원 자녀 5건, 외부 추천 7건을 받아 채용특혜를 부여한 정황이 적발됐다.
규준안 제29조(부정한 채용청탁의 금지)에 따르면 채용 과정에서 부정을 저지른 임직원에 대해 징계 등 필요한 인사 조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내부 임직원 청탁이 있더라도 암암리에 이뤄지기에 은행이 채용 청탁 의혹으로 인사위원회를 소집하더라도 특정인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찾기 힘들어 직접적 처벌까지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 게다가 사외이사, 정치권 등 외부인 청탁은 은행 내부 규정으로 처벌이 어려운 상황이다.
시중은행 검사부 관계자는 “채용비리는 내부 규정을 직접적으로 적용 받는 일반직원보다는 주로 고위 임원 등 윗선에서 이뤄지는 일인데 특히 사외이사 등 은행 외부인에 대해 적용할 방법이 없다”며 “모범규준을 은행 내부 규정에 명문화하더라도 선언적 의미에 그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금감원 “정기검사서 파악”… 제2금융권 확산되나 = 다만 이번 규준안 마련은 은행 내부 인사규정에 그동안 존재하지 않던 채용비리 관련 내용을 반영하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은행권 고위관계자는 “과거에는 (채용 청탁이) 관행적으로 이뤄졌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질타를 받게 됐듯 차차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 이 상황에서 누가 채용 관련 이야기를 꺼내겠냐”고 털어놓았다.
은행이 자율적으로 규준안을 내규에 반영하되 금감원도 정기검사시 채용 및 인사 관련 업무절차 및 내부통제 분야에서 채용비리와 관련된 부분도 눈여겨볼 전망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종합검사를 나갈 때 인사 제도, 지배구조, 이사회 운영 등이 합리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도 검사 대상”이라며 “은행들이 내규에 채용 모범 규준안을 적용하고 잘 지켜지는지는 정기검사 나갔을 때 파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은행뿐만 아니라 제2금융권에도 채용 모범 규준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4일 “금융투자나 보험, 카드 등 다른 금융업권에도 채용 절차 모범 규준이 확산돼 채용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조속히 해소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전했다. 이에 2금융권 관계자는 “은행과 달리 회사마다 상황이 천차만별이라 모범 규준의 일괄적 수용은 어려워 보인다”면서 “은행권 진행 상황을 지켜본 후 대응하겠다”고 말했다.